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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아버지를 죽인 아들

입력
2022.09.05 00:00
26면

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OECD 평균 3배 수준의 노인자살률
연명의료중단과 조력자살은 큰 차이로
의사조력자살 합법화 논의는 시기상조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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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반복적인 요구에 따라, 뇌종양 말기 환자인 아버지를 아들이 목졸라 숨지게 한 사건이 2013년 있었다. 아들이 죄책감에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기고 집을 나가자, 가족은 112에 바로 신고했다. 경찰에게 붙잡힌 아들은 '죽음을 앞둔 사형수라고 할지라도 오늘 죽이면 살인이고, 돌아가신 분의 죽여달라는 의사를 함부로 추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존속살인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조력 존엄사' 법안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런 간병 살인사건이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경우, 의사가 자살에 필요한 약물을 처방해주고, 환자가 그 약을 먹어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 이 법안의 주 내용이다.

이 법안을 제안한 쪽은 법안 통과를 원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80%가 넘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조력 존엄사는 의사조력 자살을 통한 안락사이다. '존엄'과 '안락'이라는 긍정적인 단어 뒤에 작게 숨어있는 '자살'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설문조사였다면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 의문이다.

암 환자뿐만 아니라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고령 환자들이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이 진짜 죽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 없이 살고 싶다'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조력 존엄사가 합법화되어 있었더라면, 뇌종양 말기 환자인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의사에게 죽을 수 있는 약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위 사건의 아버지는 경제적 이유로 병원 입원을 하지 못했고, 요양원에 모시려 문의했으나, 65세 이상의 노인에게만 혜택을 주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조건에 맞지 않아 거절당했다. 결국 큰딸 집에서 머물며 제대로 된 통증조절 치료도 받지 못해 고통이 극심했고, 가족에게 자신이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미안한 마음도 컸을 것이다. 만약 그 환자가 경제적 부담 없이 의료기관에서 통증조절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면 아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을까?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따랐을까?

노화와 질환으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연명의료를 적용하여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함으로서 불필요한 고통을 추가로 주지 말자는 취지의 연명의료결정법과 의사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안의 간극은 매우 크다. 우리나라보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는 선진국에서도 의사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나라는 일부이고, 대부분 허용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의사조력 자살이 합법화된 지역에서는 말기 환자가 아닌 일반 국민의 자살률 증가까지 관찰되고 있다.

자살이 존엄한 삶의 마무리인가? 삶을 자살로 마무리하는 것을 존엄하다고 평가하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의사조력 자살의 합법화는, 이런 취약 노인계층에게 자살을 권유 혹은 조장하는 사회적 압박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현대판 고려장'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될 위험이 높다.

OECD 주요 회원국의 자살률이 11.0명(인구 10만 명당)인데 반하여,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24.6명이다. 특히, 독거노인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층에서 자살이 많다. 우리나라의 노인자살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3배 수준으로 OECD 국가들 중 부동의 1위이며 그 원인을 빈곤, 고령화에 따른 건강 문제, 가정불화 등으로 분석하고 있다.

아직 노인에 대한 사회복지와 만성질환자에 대한 간병제도의 미비로 자살과 간병 살인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시점의 대한민국에서 의사조력 자살의 합법화 논의는 시기상조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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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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