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최근 공식석상에서 ‘대선 일등공신’을 자칭하는 희한한 행태를 보였다. 법원이 이준석 전 당대표의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이 임명 17일 만에 직무 정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열린 의원총회에서다. 권 대표는 자신을 향한 퇴진 요구에 대해 “단 한 번도 자리에 연연한 적이 없다. 대선 일등공신으로서, 대통령직인수위나 내각 참여를 요구할 수 있었지만 일찍이 포기한 바 있었다”고 했다.
□ 지난 대선 후 일부 언론이 그를 포함한 ‘윤핵관’ 인사들 몇몇과 이 전 당대표 등을 윤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니 뭐니 자발머리없이 떠벌리고 앞다퉈 추켜세우는 걸 보며 약간의 욕지기를 느끼기도 했다. 도도한 민심의 바람을 타고 나아갔던 윤석열호에 용케 승선해 나발 불고 꽹과리 몇 번 치며 감 놔라 배 놔라 설레발 몇 번 친 걸 두고 일등공신이라니. 민의가 첨단정보통신망을 타고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4차 산업혁명기에 이 무슨 고리타분한 의식구조인가 싶었던 것이다.
□ 자고로 정권 수립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한 인물을 꼽자면, 조선 건국기의 정도전, 세조 집권기의 한명회, 박정희 정권의 김종필 정도라고 본다. 모두 기존 왕조와 왕권, 민주주의 체제라는 강력하고 엄연한 기존 질서를, 좋든 나쁘든 신명을 걸고 뒤엎은 사람들이다. 한명회는 애초부터 명리를 좇았지만, 정도전과 김종필은 나름의 경세관과 철학을 갖고 대사를 도모했다고도 평가할 만한 사람들이다.
□ 반면 윤 대통령 주변엔 자신이 출마 결심을 이끌었다느니, 당내 후보 경선이나 대선 득표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느니 하는 이들이 숱하지만, 공신이라 할 만한 인물은 없다고 본다. 문재인 정권이 지리멸렬해 정권교체는 대세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소인 24만7,000여 표 차로 간신히 대선에서 이긴 걸 되레 부끄러워해야지 어깨에 힘 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 원내대표의 일등공신론을 보며, 지금은 어설픈 공신첩을 뒤적일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새 정부 성공에 밀알이 되겠다는 각오와 자세가 더욱 절실한 때라는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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