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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명절을 즐기는 말라카(Melaka)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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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물결을 일으키는 작은 배를 타고 말라카 강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불빛이 강물에 총총 떠 있었다. 운하 같은 좁은 강폭이지만 말라카 무역항의 역사가 시작한 장소. 말라카 항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풍랑을 피해 온 배들이 이 강을 가득 채웠다니, 돛을 올리고 내리느라 분주했을 선원들의 날랜 모습이 상상 속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강 옆의 조그만 식당에 앉아 15세기 무역상이 오가던 강물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 병은 낯선 꿀맛이었다.
거리 하나에도 각양각색의 사원이 있었다. 명나라 때부터 말라카로 옮겨온 중국계 이주민들이 풍수지리에 입각해 가장 적합한 자리에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는데, 좋은 자리는 여럿이 동시에 알아보는 법인지 300m 거리에 다양한 종교의 사원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중국에서부터 범선으로 자재를 실어다가 만든 중국 사원에는 바다에서 선원들을 지켜주길 기도하는 이가 많았던지라, 뱃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기는 관음보살상이 귀히 모셔졌다. 골목 하나 건너 무슬림 상인이 세웠다는 이슬람 사원으로 들어갈 때는 아무리 덥더라도 머리카락과 몸의 노출이 없는 복장을 갖춰야 한다. 바로 옆 인도계 상인들이 지은 힌두 사원은 지혜와 행운의 신인 가네샤에게 바쳐졌으니, 제단 중앙은 코끼리 머리에 사람 몸을 하고 4개 손을 가진 가네샤의 차지다.
숙소로 돌아오니 주인이 월병을 하나 내밀었다. 현지 물가 치고는 꽤 비싼 간식이라 덥석 받고 나니, 아 추석이 다가왔구나 싶었다. 중국계 사람들만 쇠는 명절이라 조용히 지나가고 있어서 깜박 잊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숙소 주인이 어느 인종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도계 주인장은 다음엔 꼭 2월쯤 와서 '타이푸삼'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참회와 속죄의 의미로 고행의 행진을 하는 힌두교의 축제 말이다. 예전에 묵었던 말레이계 주인은 한 달 라마단 금식기간이 끝난 걸 축하하며 코코넛 잎으로 싸서 찐 밥을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인지라 한 해의 시작마저도 중국계가 지키는 음력 설날에다 무슬림 신년인 '아왈 무하람', 힌두 신년인 '디파발리'까지 모두 다르다. 이 모두가 공휴일이니, 학교 안 가기 위해 온갖 꾀를 부리는 꼬마들은 내심 신이 나겠다 싶었다.
입국 전 PCR 검사가 내일부터 폐지란다. 여행업자나 관광객에게도 희소식이지만 누구보다 반길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난 몇 년간 명절이면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는 해외 교민들.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마침내 들려오는 낯익은 한국말과 여기저기 보이는 한글 간판들, 고향집으로 가는 리무진버스를 기다리며 설레던 시간이 모두 아득하기만 하단다. 언제든 갈 수 있던 우리는 고향집 명절 모임에 빠질 핑계를 은근슬쩍 찾곤 했었는데 말이다.
말라카 사람들이 지키는 명절이 제각각인 것처럼, 어쩌면 명절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의미를 모아 부여하기 나름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온기가 그리웠던 순간을 최대한 길게 기억해 보려고 한다. 다시 만나면 제대로 거르지 못한 거친 말들로 서로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하겠지만, 닿지 못해서 안타까웠던 마음을 한 번은 되돌아보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부디 모두가 의무가 아니라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 추석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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