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입력
2022.09.02 04:30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원시 다세대주택. 박지영 기자

지난달 21일 경기 수원의 다세대주택. 60대 여성과 40대 두 딸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현장에선 A4 용지 크기 노트 9장에 듬성듬성 쓴 '경제적으로 힘들다' '몸이 아프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어머니는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었고, 큰딸은 희소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숨진 세 모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미안하다"였다. 이들이 살았던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2만 원. 집주인 딸에 의하면, 6월 월세를 7월에 내며 전화로 "병원비 정산하느라 여력이 없어서 좀 늦어졌다. (집주인인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4년 2월,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가 남긴 마지막 말도 "죄송하다"였다. 이들은 5만 원짜리 14장, 70만 원이 담긴 흰색 봉투를 남겼다. 봉투 겉면엔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정부는 8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발생 후 단전·단수·단가스·건강보험료 체납·금융 연체·국민연금 체납 등 34종의 각종 정보를 토대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수원 세 모녀도 여기에 해당했지만, 이사 후 전입 신고를 하지 않아 끝내 도움의 손길이 닿지 못했다.

이번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또 '호떡 집에 불난 듯' 호들갑이다. 수원 세 모녀처럼 전입신고 없이 거주지를 옮긴 취약가구를 찾아내기 위한 발굴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전수조사' '일제조사'란 말이 회자되고, 경찰이 실종자나 가출자처럼 취약계층 거주지를 파악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전수조사든 일제조사든 발굴은 사람의 몫이다. 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감당할 대상의 규모는 관리 능력을 한참 벗어났다. 공무원 1명이 관리해야 할 기초생활수급자만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한다. 일부 전담 인력은 코로나19 대응 업무에 배치돼 본래 업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2013년에는 격무에 시달리던 사회복지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네 차례나 발생했다. 이 중 한 명은 죽기 전 일기에 '나에게 휴식은 없구나. 사람 대하는 게 너무 힘들다. 일이 자꾸만 쌓여 가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고 적었다.

결국 8년 전과 똑같다. 복지 담론이 우리 사회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바뀌는 건 없다. 사회복지 공무원은 계속 허덕이고, 가난한 이들의 설 자리는 여전히 좁다. 2019년 인천 일가족, 2019년 양주 세 부자, 2019년 성북동 네 모녀, 2019년 관악구 탈북민 모자, 2020년 대구 일가족, 2020년 부산 일가족, 2021년 강서구 일가족, 2022년 창신동 모자... 극단 선택의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을 다룬 책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에서 "약자의 죽음은 정치적"이라고 했다. 단지 한 인생이 끝나는 걸 넘어 한 사회가 어떤 선택을 빼앗아 버렸는지 알려주는 사건이라는 얘기다.

송파와 수원의 어머니와 딸은 모두 서른을 훌쩍 넘은 성인이었다. 단 한 명이라도 반대했다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본다. 생을 마감하겠다는 결심이 의도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은 벼랑 끝 낭떠러지에서 어쩔 수 없이 떠밀린 걸까.

윤태석 사건이슈팀장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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