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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와 푸틴의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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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때로 스스로를 붕괴시킨 업적으로 역사에 남는 이가 있다.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미하일 고르바초프(1931~2022)가 그렇다. 소련의 마지막 공산당 서기장, 동구권 국가들에 군사 개입을 포기해 연방이 해체되게 만든 인물, 그럼으로써 세계 냉전체제를 종식시킨 주역이다. 그 업적으로 고르바초프는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 지도자로 일컬어졌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소련 시대’를 닫았다는 같은 이유로 그는 쿠데타를 겪고 보리스 옐친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야 했다.
□ 우리나라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군사적 긴장이 완화하고 동구권이 개방되는, 고르바초프가 촉발한 세계사적 변화에서 혜택을 봤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발 빠르게 고르바초프와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수교를 맺은 것을 비롯해 중국, 동유럽 등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확대했다. 북방정책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에 기여했고 경제적으로 동유럽 시장을 열어젖혔다.
□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현실을 보면 고르바초프의 업적이 무색하다고 할 법하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했던 개혁·개방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성숙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 1999년 옐친에 이어 권력을 잡은 블라디미르 푸틴은 20여 년 동안 독재의 길을 걷고 있고, 지난 2월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듯 “소련의 붕괴로 세계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세계는 신냉전 분위기로 얼어붙고 있고 전쟁 여파로 인한 물가급등에 시달리고 있다.
□ 고르바초프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의 끔찍한 방사능 유출 사고를 목격하고 핵무기의 위험성과 러시아 체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에겐 미래를 보는 남다른 시야가 있었지만 권력을 안정시키면서 체제 변화를 실행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어쩌면 지도자 한 명을 제외한 러시아 전체가 개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게 근본적 한계였다. 푸틴의 러시아에도 변화의 때는 아직 요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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