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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ㆍ평창영화제 폐지 수순… 국내 영화제들 시련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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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제들이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강릉국제영화제에 이어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지방자치단체 예산 지원 중단에 따라 폐지 수순을 밟고 있고, 전주국제영화제와 울주국제산악영화제는 집행위원장 공석으로 업무 공백 상태에 놓였다.
평창영화제는 “영화제 예산 지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자체의 현실적인 문제로 더 이상 영화제를 유지할 수 없다”며 지난 25일 영화제 중단을 선언했다. 앞서 강원도는 예산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평창영화제 지원 중단을 밝혔다. 올해 평창영화제는 강원도로부터 18억 원, 평창군으로부터 3억 원을 지원받아 6월 23~28일 열렸다. 지자체 지원금이 예산의 90%가량을 차지했다. 평창영화제는 평창동계올림픽의 평화 정신을 잇는다는 목적으로 2019년 처음 열린 이후 올해까지 4회를 치렀다.
강릉영화제는 4회 개막(11월 3일)을 세 달가량 앞둔 지난달 26일 영화제 중단을 결정했다. 김홍규 강릉시장이 6월 28일 예산과 행정 지원 중단을 통보하면서 내린 조치다. 2019년 첫 막을 올린 강릉영화제는 강릉시로부터 예산 90%에 해당하는 약 30억 원을 매년 지원받아 왔다.
평창영화제와 강릉영화제 폐지 가능성은 지난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직후부터 영화계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선거기간 강릉영화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최문순(더불어민주당) 전 지사의 문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최 전 지사 시절 만들어진 평창영화제에는 친문 배우 문성근씨가 이사장으로 일했다.
영화계는 두 영화제에 대한 급작스런 예산 지원 중단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영화제의 효용성에 대한 지자체의 판단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지자체장이 바뀌자마자 정책이 표변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영화제가 온전히 열리지 못했다가 올해 겨우 제대로 치렀거나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지나치게 화급히 예산을 끊었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유예기간 없이 영화제를 없앤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라며 “지자체장이 바뀌면 언제든 영화제를 없앨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잇달아 남겼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릉영화제의 경우 현 시장과 같은 국민의힘 소속인 김한근 전 강릉시장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전 이사장 자택을 세 차례나 찾은 끝에 이사장으로 영입하고선 시장이 바뀌자 예산 지원이 끊겨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해외 영화인들에게 명망 있는 김 전 이사장이 수장으로 있던 영화제가 순식간에 폐지 수순을 밟게 돼 국제적 불신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올해 강릉영화제에는 칸ㆍ베를린ㆍ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한꺼번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한국제작가협회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 23개 국내 영화단체는 지난 17일 성명서를 내고 “영화제의 존폐를 지자체장이 일방적으로 단칼에 결정하는 것은 영화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관객들의 의사와 권리를 침해하는 반문화적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주영화제와 울주산악영화제는 수장 공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주영화제는 이준동 전 집행위원장이 6월말 임기 종료로, 울주산악영화제는 배창호 전 위원장이 지난달 자진 사퇴하면서 수장이 없는 상태다. 전주영화제는 비슷한 시기 전주시장이 바뀌어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장성호 전주영화제 사무처장은 “이사회 추천을 거쳐 새 집행위원장을 10월초까진 위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내년 영화제가 4월말 개최될 걸 감안하면 업무 차질이 예상된다. 울주산악영화제는 울산시와 울주군이 영화제 예산 지원을 두고 조정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 새 집행위원장 위촉 절차가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다. 영화계에선 영화제가 내부 인재를 키우기보다 지자체 입김에 휘둘리며 외부 인사 영입에만 집중하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자체 지원에 의존하는 영화제 개최 방식을 이젠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영화제들이 지역마케팅을 내세워 지자체 지원을 받다가 지자체에 예속돼 영화제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전찬일 평론가는 “지자체 지원 없는 영화제를 당장 만들기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도 “재정 자립 계획을 중장기적으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동진 평론가는 “규모를 줄이더라도 해외 유명 영화제들처럼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며 “재원의 다각화, 경영을 아는 예술 전문가의 투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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