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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IRA가 한국 제조업의 미래 산업 전환 가속화 계기 됐다

입력
2022.09.02 04:30
6면

중국 제외 미국 중심 공급망 구축
한국 차세대 먹거리 산업 기회
거대한 미국 판매시장 확보 위해,
한화솔루션 태양광 시설 추가 공급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공장 신설
국내 배터리 3사 투자 확대 박차

편집자주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연달아 국내 제조업 육성책을 내놓으며, 외국 기업에까지 'Made in USA'를 요구합니다. 미국의 '제조업 국가 복귀' 선언은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을 어떻게 바꿀까요? 한국 기업들은 어떤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지 알아봅니다.


한화솔루션 연구원이 경기 성남시 판교 연구개발센터에서 탠덤 셀 효율을 개선시키기 위한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한화솔루션 제공

한화솔루션 연구원이 경기 성남시 판교 연구개발센터에서 탠덤 셀 효율을 개선시키기 위한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한화솔루션 제공


1일 경기 성남시 한화솔루션 판교 연구개발(R&D)센터에서 만난 양병기 한화큐셀 부문 페로브스카이트 개발담당 2팀장은 "거대한 태양광 시장이 열렸다"고 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을 통해 에너지 안보 및 친환경 산업 제조 역량 강화 부문에 3,690억 달러(약 491조8,700억 원)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배정했고, 이를 통해 태양광 산업 육성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는 의미다.

전체 태양광 사업의 65%를 해외에 의존하는 한화솔루션 입장에선 IRA는 새 성장동력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양 팀장은 "법안 취지인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청정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며 "태양광 셀·모듈, 발전 시설 등 핵심 제품 모두 IRA 대상에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양 팀장은 가장 큰 경쟁자인 론지솔라 등 중국 업체가 미국 시장 진입이 사실상 어려워져 한화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한화솔루션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가정·상업용 태양광 모듈 부문에서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산업용 부문에선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업체의 기세에 힘겨워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이 연구 중인 실리콘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시제품. 한화솔루션 제공

한화솔루션이 연구 중인 실리콘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시제품. 한화솔루션 제공


양 팀장이 이처럼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태양광 산업의 핵심 기술인 전력 취집 기술에 있다. 셀 분야는 태양광에서 얻은 에너지를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전력화할 수 있느냐로 승부가 갈리는데, 한화는 현재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태양광 모듈인 PERC 셀을 세계적 수준의 효율(20% 초반대)로 만들고 있다. 또 2025년이면 효율성을 30%대까지 끌어올린 실리콘-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을 내놓을 계획이다.

차세대 태양광 셀로 불리는 탠덤 셀PERC 셀의 이론적 한계 효율(29%)을 넘어선 44% 효율화가 가능해 본격 태양광 시대를 열 제품으로 꼽힌다. 한화 측은 올해 초 글로벌 최상위 수준인 28.7%(독일 프라운호퍼 ISE 연구소 공인) 효율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양 팀장은 "실제 셀 크기(160mm)를 축소한 10mm 셀에, 최적의 조건을 바탕으로 세운 기록이어서 양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탠덤 셀은 현재 주로 유럽 전문 기관이 연구하고 있을 뿐이고 기업 중에서는 몇몇 중국 기업을 빼고는 한화가 유일해서 독자적으로 개발에 성공해 본격 생산을 하면 사실상 독보적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제조업 육성책이 과거 굴뚝 산업에 기댔던 한국 기업들에게 또 다른 성장을 위한 튼튼한 동아줄이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국의 시장 진입을 견제하는 동시에 국가 경제의 무게 중심을 미래 산업으로 옮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도 이 흐름을 타고 반등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캐시카우' 굴뚝산업 집착, 이젠 성장 걸림돌로…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반세기 동안 제조업은 섬유, 의류, 신발 등 경공업을 거쳐 중화학, 반도체·정보통신(IT) 등으로 모습을 바꿔 가면서 국내 총생산 대비 30% 안팎의 비중을 유지할 만큼 한국의 대표 수익 창출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60년대 고도 성장기 이후 2000년대를 지나며 제조업의 성장세는 빠르게 가라앉았고,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친 현재는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상당수 제조업체들이 갈수록 영세해지고 인력의 고령화에 힘겨워하며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국내 제조업 종사자 규모만 봐도 기초 체력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알 수 있다. 최근 5년 사이(2015년 약 461만 명→2019년 약 443만 명) 약 18만 명이나 줄었다. 삼성전자(2020년 기준 약 10만 명)와 현대차(7만 명)의 전체 임직원 수만큼 현장을 떠난 셈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조업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주물, 열처리, 도금, 용접 등 뿌리산업들이 최신 시설을 앞세운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림에 따라 종사자가 빠르게 줄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를 두고 전문가들은 시대적 변화에 제때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눈앞의 수익만 챙기려 하고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R&D)에 소홀했으며,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것. 조선업도 2010년대 중반 해양 플랜트에 뛰어들어 고부가가치를 노릴 수 있는 기획, 설계, 엔지니어링 등 분야에는 나서지 못하고, 저가 수주 위험이 있는 시공에만 기대다 큰 위기에 빠졌다.



미국서 미래 먹거리 시장 열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 제조업 육성책이 이처럼 한계에 다다른 산업계에 단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 시장에서 긴 투자 기간 없이도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환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키우려는 제조업 분야는 대부분 그동안 우리 정부에서도 차세대 먹거리로 꼽았다"며 "자연스럽게 미국이라는 거대한 판매 시장을 확보할 수 있어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의 먹거리가 된다"고 강조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산업이 대표적이다.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전기차처럼 미국에서 판매하려면 배터리의 생산지는 북미 지역이어야 하고,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제련한 원자재만 써야 해 사실상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시장 진입이 어려워졌다. 세계 1위 배터리 회사인 CATL 등 중국 업체들과 경쟁 중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삼대장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이들 배터리 3사는 북미에 시설을 늘리는 등 대목을 맞을 채비에 나섰다. ①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1위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손잡고 공장 3개를 신설하며, 스텔란티스와 캐나다 합작 공장을 짓기 위한 공동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미시간에서는 단독 공장 증설도 진행 중이다. ②SK온 역시 포드와, ③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각각 합작사를 세워 북미에서 사업 확장을 하고 있다.

3사가 계획대로 시설을 마련하면 미국 내 생산 능력이 전기차 약 420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규모(약 380GWh)로 커진다. 현재 3사 외 미국 내 생산 시설을 보유한 대표 배터리사는 일본 파나소닉인데, 생산 규모는 약 40GWh에 불과해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받아 안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지난달 29일 일본 완성차 업체 혼다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미국 내 파우치 배터리 셀과 모듈을 만들 합작 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업체들은 핵심 부품 75% 이상을 북미에서 조달하지 않으면 관세를 내야 하는 신북미자유무역협정도 적용받고 있다"며 "미국 현지서 제품을 생산 중인 한국의 배터리 업체에 주문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기차 보급이 더 늘어나면 자연스레 배터리의 생애 주기(제조→수리→충전→재활용)까지 확보할 수 있어, 버려진 배터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반사 이익도 누릴 수 있다. 수명을 다한 폐배터리에서 원자재를 뽑아 또 다른 배터리를 만드는 데 다시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오르내리는 데 영향을 덜 받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식이다. 3사가 최근 폐배터리 산업에 투자를 늘리며 자체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양광·반도체도 혜택 최대화 위해 시설 확장 주력

삼성전자 직원들이 반도체 생산라인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직원들이 반도체 생산라인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친환경 산업의 전망도 밝다. IRA는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이도록 하고 있어 청정에너지 산업 육성은 필수다. 태양광만 해도 국내 시장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에 한계가 분명한데, 미국에서 신규 설비를 지으면 투자세액 공제 혜택 기간 10년 연장, 적용 세율 30% 상향, 제품 생산 세액 공제 등을 받을 수 있어 기존 업체로서는 성장의 기회로 삼을 만하다.

한화솔루션은 약 2,600억 원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현재 미 조지아주에 1.7GW 규모의 모듈 공장을 운영하고, 추가로 약 2,000억 원을 들여 1.4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짓기로 했다. 한화가 신재생에너지 부문으로 가장 큰 이익을 낸 2019년의 영업 이익 2,235억 원을 뛰어넘는 액수다.

한화 측은 태양광 모듈 사업뿐만 아니라 올해 3월 약 1,400억 원을 들여 인수한 미국 REC실리콘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 회사는 태양광, 반도체용 폴리실리콘과 특수가스를 만드는데 이차전지, 반도체 등 고부가 소재 사업으로 영역 확대가 기대된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태양광 시설 추가 공급, 발전소 건설 등 다양한 투자 시나리오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기업 미국 투자 계획

국내 주요 기업 미국 투자 계획

태양전지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OCI도 미국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 OCI는 한화솔루션과 2024년부터 10년 동안 폴리실리콘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으며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한 데다, 미 시장에 경쟁자인 중국 업체 진입이 어려워져 현재 3위인 점유율을 높일 기회로 보고 있다.

반도체 생산·R&D에 총 520억 달러(약 69조 5,000억 원)를 지원하는 미 반도체 지원법도 반도체 기업들에겐 호재로 다가온다. 미 정부는 구체적으로 2022 회계연도(2021년 10월~2022년 9월)부터 5년 동안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게 세액공제를 통해 390억 달러(약 52조 1,400억 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반도체 장비 소부장 기업들은 그동안 중국 시장에서 경험한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런 흐름을 타기 위해 미국 내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약 22조7,200억 원)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건설에 들어갔고, 주 정부 세제 혜택 확대를 위해 텍사스주에 1,921억 달러(약 256조 8,300억 원)를 투입해 11개 공장을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서도 냈다. SK하이닉스는 미국에 후공정 패키지 공장, R&D센터 신설을 위해 150억 달러(약 20조5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양은영 코트라 지역조사실장은 "미국에 제조업 생산 시설이 들어오면 완제품만이 아닌 부품, 중간 소재까지 수요가 많아지는 효과를 보게 된다"며 "미국에선 기술을 갖춘 산업을 육성하고 있어 우리 기업이 협력해 간다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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