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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와 크림반도

입력
2022.08.29 18:00
수정
2022.08.29 18:33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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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크림반도 반환을 논의하는 정상급 국제회의인 '크림 플랫폼' 참석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크림 플랫폼 개회사에서 8년 전 러시아에 빼앗긴 크림반도를 이번 전쟁에서 되찾겠다고 공언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크림반도 반환을 논의하는 정상급 국제회의인 '크림 플랫폼' 참석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크림 플랫폼 개회사에서 8년 전 러시아에 빼앗긴 크림반도를 이번 전쟁에서 되찾겠다고 공언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년 전 러시아에 빼앗긴 크림반도를 탈환하겠다고 지난 23일(현지시간) 공식 선언했다. 전쟁 발발 6개월이 지난 현재 전황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2월 24일 러시아 침공 당시만 해도 일주일이면 수도 키이우가 함락되고 한 달이면 전쟁이 끝날 것이란 예상이 주류였다. 그러나 보기 좋게 빗나간 데 이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실질지배하는 지역까지 영토수복을 공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젤렌스키가 크림반도를 언급한 것은 이 전쟁의 본질을 꿰뚫고 국제법적 한계에 경종을 울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모든 것은 크림반도에서 시작됐다”고 주의환기했다. 이는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무력위협에 따른 엉터리 주민투표를 마치 주민의 정당한 자결권 행사인 양 갖다 붙인 전례를 지적한 것이다. 이는 코소보 사태와 비견된다. 구 유고연방이 해체되고 코소보 주민들은 세르비아에서 독립하려다 1990년대 말 1만3,000여 명이 숨지는 참혹한 피해를 겪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개입으로 1999년 인종학살이 끝나자 코소보는 2008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포했고 서방은 이를 승인했다.

□ 당시 서방은 코소보의 독립을 잔악행위로부터 해방되려는 국제법상 자결권 행사로 이해했다. 러시아는 2014년 경우가 전혀 다른 코소보 사례를 태연하게 언급하며 크림반도 주민의 자결권을 강조했고 일사천리로 병합했다. 국제법의 원칙인 주권존중, 영토보전, 자결권 존중이 완전히 다른 사례에서 똑같은 표현으로 악용되는 셈이다. 강대국들이 국제법을 견강부회로 활용하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 크림반도에선 지난주 우크라이나의 후방 교란작전이 시작됐다. 잇따른 폭발로 전력의 절반가량이 파괴된 러시아 흑해함대는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정작 미국과 서방은 젤렌스키의 행보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6·25전쟁 당시 이승만의 입지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적당히 전쟁을 마무리하려던 미국은 한국군 단독이라도 북진통일에 나선다는 이승만에 대해 제거계획까지 세운 사실이 문서로 드러난 바 있다. 젤렌스키의 크림반도 탈환 선언이 일종의 정전협상용인지, 아니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끝장을 보겠다는 무서운 진심인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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