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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찾아준 노숙인 이름… 69년간 '없는 사람'으로 살아

입력
2022.08.30 04: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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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로 출생 신고, 주민등록 없이 떠돌던 김씨
보육원 폭행에 탈출… 추우면 절도로 교도소행
대구지검 공익대표팀, 공단에 법률 구조 요청
검사·수사관이 신원보증…69년 만에 성본 창설
김씨 "성실히 살 것" 검찰·공단 "재범방지 의의"

시각물=박구원 기자

시각물=박구원 기자

"출생신고도 안 했고 주민등록번호조차 없는 피의자가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대구지검 공익대표전담팀(팀장 이웅희 검사)은 같은 검찰청 형사부에서 지원 요청 연락을 받았다. 절도 피의자로 검거된 김모씨가 이름, 나이, 주소지를 확인할 수 없는 '무적자(無籍者)'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김씨가 어린 시절 들은 생년월일로 얼핏 계산해보니, 그는 69년간 '서류에 없는 사람'으로 살아온 터였다.

전담팀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은 그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열 살 무렵 어머니는 '돈 많이 벌어 올게'라고 말하곤 김씨를 보육원에 맡긴 채 떠났다. 어머니를 수소문 끝에 찾아갔지만,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고아가 됐다.

보육원 생활도 고통이었다. 홀로 남겨진 김씨에게 원장은 지속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보육원을 탈출했지만, 그는 출생신고조차 안 된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노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폐지를 줍거나 리어카 장사를 해보기도 했지만, 생계유지는 쉽지 않았다.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그에게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서비스는 언감생심. 그는 몸이 아파도 병원 치료 한 번 받기도 어려웠다. 한겨울 추위에 일부러 물건을 훔쳐 교도소에 들어가는 게 그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렇게 저지른 절도만 20여 회, 교도소 수감 생활도 7차례나 반복됐다. 그는 현재도 현금 5만8,000원과 시가 20만 원 상당의 지갑을 훔치려다 절도미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김씨가 주민등록을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자랐던 보육원이 사라져 출생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형사처벌을 받는 과정에서도 지문으로 신원 등록을 대체했을 뿐,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어도 법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69년 만에 대구지검 공익대표전담팀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이름을 찾은 김모씨의 성본 창설,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허가 관련 자료. 김씨 측 제공

69년 만에 대구지검 공익대표전담팀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이름을 찾은 김모씨의 성본 창설,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허가 관련 자료. 김씨 측 제공

전담팀은 기초 조사를 마친 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사건을 접수하는 것으로 김씨의 신분 등록 절차에 착수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해 문맹인 김씨를 배려해, 공단 소속 법무관이 전담팀 조사 기록을 넘겨받은 뒤 그를 대리했다. 주소지는 대구지검 산하 시설의 주소를 빌렸고, 가족이 없는 김씨를 위해 전담팀 소속 차호동 검사와 배상인 수사관이 직접 신원보증인으로 나섰다.

김씨의 성장환경 진술서와 면담 보고서, 판결 전 조사서 등을 검토한 대구가정법원은 올해 7월 14일 그가 기억하는 이름으로 성과 본을 인정한 뒤, 이달 19일 가족관계등록부 창설을 허가했다. 사건을 맡은 김동철 공익법무관은 "김씨는 69년 동안 최소한의 사회복지서비스도 누리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체감과 동질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재범 가능성을 낮췄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씨 역시 전담팀에 "많이 반성하고 있고 앞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성실히 살겠다"고 약속했다.

김씨 사례가 알려지면서 전담팀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일선 검찰청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전담팀은 이에 공익대표 업무 매뉴얼도 제작했다. 전담팀장인 이웅희 검사는 "신분 정보 없이 수십 차례 국가기관을 거쳤음에도 피의자 신분 창설 노력을 적극 기울이지 않아 기초적 지원도 받지 못한 건 아쉬운 측면"이라며 "처벌도 중하지만 재범을 방지해 사회구성원으로 포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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