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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오던 날에도 배달을 멈출 순 없었다

입력
2022.08.29 22:00
27면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진 8일 서울 관악구 도림천이 범람, 주변을 지나는 배달 라이더가 아슬아슬하게 물살을 헤치며 바이크를 옮기고 있다. 뉴스1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폭우가 쏟아진 8일 서울 관악구 도림천이 범람, 주변을 지나는 배달 라이더가 아슬아슬하게 물살을 헤치며 바이크를 옮기고 있다. 뉴스1

"비 오는 날 배달을 시키는 게 맞아요, 안 시키는 게 맞아요?" 매년 장마철이면 듣는 질문이다. 맥도날드에서 일할 때는 배달을 시키지 않는 게 좋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시급을 보장받기 때문에 일감이 줄어드는 위험을 노동자가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나 눈이 너무 많이 오면 도보로 배달할 수 있는 거리의 주문만 받거나 배달을 아예 막기도 했다. 그런데 맥도날드에서도 배달대행사를 이용하면서 맥도날드 라이더들에겐 가까운 거리를, 배달대행 라이더에겐 먼 거리 배달을 맡겼다. 위험이 외주화된 나쁜 일이지만, 동네 배달대행 라이더들을 위해 배달을 막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동네 배달대행사 소속 라이더들은 시급이 보장되지 않아 일감이 없으면 수익도 0원이다.

수익만이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을 강타한 폭우 때, 모 치킨 프랜차이즈 부사장이 끝까지 배달하라는 지시를 직원들에게 내렸다가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악마 같은 임원을 치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동네 배달대행사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폭우가 내려도 배달을 하는 업체가 단 하나라도 나타나면 음식점이 이 업체로 배달대행사를 옮겨버린다. 물론, 본사 회장님이 배달업무를 지시하고 싶어도 동네 모든 배달대행업체가 거부하면 배달을 시킬 수 없다. 문제는 위험한 배달 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책임마저 배달업체와 노동자에게 떠넘길 수 있는 배달시장 구조다.

배민 쿠팡 요기요는 이 문제를 알고리즘에 떠넘길 수 있다. 요즘처럼 날씨가 쾌청하면 3,000원, 2,500원의 최저 배달료를 주다가, 비가 오는 순간에만 배달료를 올려 지급하면 된다. 날씨가 좋은 날엔 요금도 배달주문도 적어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주문도 많고 배달료도 높은 궂은 날씨에 열심히 일해야 하는 구조다. 라이더들 중에는 마음속으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나 역시 우비를 꺼낼 때 설렌다. 비 오는 날 배달을 시키지 말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날씨가 안 좋을 땐, 배달이 한 시간 이상 걸리더라도 화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기후재앙의 순간에 배달 서비스를 할지 말지를 기업과 노동자에게 묻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질문이다. 오히려 폭우 폭설에 배달회사들이 어떤 규칙에서 경쟁해야 하는지를 우리 사회와 국가에 묻는 게 맞다. 우리는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답을 가지고 있다. 야외 노동자에겐 길거리가 작업장이다. 하늘에서 폭우가 내리는 건 공장 천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쏟아지는 것과 같다. 산재를 유발할 위험요소가 사라질 때까지 모든 기업과 종사자들이 작업을 중지하는 게 산안법을 준수하는 일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게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수익이다. 현재 배달대행노동자들과 일부 자영업자도 고용보험을 납부하고 있다. 폭우, 태풍, 폭설 등 배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일시적 실업으로 보고 휴업급여를 지급하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다. 이는 노동자의 안전을 생각하는 사업주가 노동자를 위험에 빠트리면서까지 일을 시키는 사업주로 인해 시장에서 도태되는 걸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

정의로운 기후 전환은 야외 노동자들의 작업장을 안전하게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공장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 책임은 노동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기업과 국가에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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