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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도 안 돼 '주호영 비대위' 좌초…진짜 '비상상황' 맞은 여당

입력
2022.08.26 15:10
수정
2022.08.26 22: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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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설치할 만큼 비상상황 아냐"
남부지법, 비대위원장 직무정지 결정
주호영 "정당자치라는 헌법정신 훼손"
국민의힘, 이의신청하고 27일 의총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대구 달서구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가운데는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대구 달서구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가운데는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서재훈 기자

지난 18일 출범한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가 26일 법원 결정으로 열흘도 안 돼 좌초했다. 법원이 본안 판결 때까지 주 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가처분 결정을 인용하며, 이준석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면서다. 이날 결정으로 국민의힘은 대표도 없고, 비대위원장도 직무정지 상태인 그야말로 '비상상황'을 실제로 맞게 됐다. 특히 여당이 내부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개최한 연찬회 직후 법원 결정이 나왔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상당했다.

이날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부장 황정수)는 지난 10일 이 전 대표가 주 위원장과 국민의힘을 상대로 제기한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본안 판결 확정 때까지 주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표가 당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경우 "채무자 적격(자격)이 없다"며 각하했다.

재판부가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사실상 인용한 이유는 비대위 출범의 전제가 잘못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비대위 설치 및 비대위원장 임명 요건인 '비상상황'은 엄격히 해석돼야 하는데, 사실관계와 사정을 비춰보면 '비상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직을 수행하고 있어 당대표가 궐위 상태가 아니며 △최고위원 사퇴로 인한 지도부 공백 문제도 전국위원회가 다시 최고위원을 선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으므로 비대위 설치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민의힘 측은 즉각 판결에 불복하며 남부지법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항고한다는 방침이다. 당사자인 주 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매우 당혹스럽다. 정당의 내부 결정을 사법부가 부정하고 규정하는 것은 정당자치라는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저항했다.

그는 재판부의 정치 성향도 문제 삼았다. 주 위원장은 "재판장이 특정 연구모임 출신으로 편향성이 있어서 이상한 결과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현실화됐다"고 해석했다. 박형수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모든 절차가 당헌과 당규에 따라 진행됐고,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당원이 찬성표를 보내 비대위가 의결됐으므로 법원의 결정은 국민의힘 당원들의 의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남부지법은 공지를 통해 "황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회원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날 법원 결정으로 국민의힘은 완벽한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국민의힘은 충격 속에 토요일인 27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는 공백이 된 지도부를 새로 구성하기 위한 방안이 우선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지만, 비대위 출범을 주장한 권 원내대표와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그룹의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대위 출범이 의원총회의 압도적인 지지를 거쳐 결정된 만큼, 지도부는 물론 의원들 대다수는 충격이 상당하다. 더구나 판사 출신인 주 위원장과 전주혜 비대위원 등은 가처분 결정의 기각 가능성을 높게 점치며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도 "법원이 비상상황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박형수(가운데)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 26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22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한 후 낭독하고 있다. 천안=뉴시스

박형수(가운데)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 26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22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한 후 낭독하고 있다. 천안=뉴시스

판결 내용뿐만 아니라 결정 시점도 반전이었다. 당초 남부지법 측은 지난 23일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사건에 대해 "다음 주 이후에 결정이 날 예정"이라고 공지한 바 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 이날 법원 결정을 예상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법원 결정이 국민의힘 연찬회 결의문이 채택된 직후에 나왔다는 사실도 공교로운 대목이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1명은 25일부터 충남 천안에서 모여 당 쇄신 방안 및 민생 현안에 대해 릴레이 토론회를 열었다. 국민의힘은 그 결과물을 토대로 26일 오전 결의문을 발표하며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며 민생의 한숨, 서민의 땀, 사회적 약자의 눈물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밝혔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통령까지 참석한 연찬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시간에 법원이 (이 전 대표 측의) 인용 결론을 내렸다는 것은 굉장히 정치적인 의사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도 충격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전날 여당 연찬회에 참석해 여권 단결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장에서 "지금부터 당정이 하나가 돼 정기국회에서 유능한 정당과 정부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자"고 당부했다. 그러나 당 내홍 사태 끝에 가까스로 출범한 비대위마저 기능이 정지되면서 집권여당의 정상화는 갈 길이 멀어졌다.


장재진 기자
천안 박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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