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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여성 경제활동' 많을수록 출산율 높은데, 한국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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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다시 한번 '세계 최저 출산율' 기록을 깼다. 한국 정치인들이 저출생 대책으로 쏟아부은 수십억 달러는 효과가 없었다. 이들은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영국 BBC방송, "South Korea records world's lowest fertility rate again"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0.81명)이 발표된 24일 이후 블룸버그통신과 영국 BBC방송 등 외신은 한국 출산율이 전년(0.84명)보다 떨어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 정부에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NBER는 올해 4월 '출산율 경제학의 새로운 시대'라는 보고서에서 두 가지 통설을 반박했다. ①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사회활동을 많이 할수록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것과 ②저출생은 젊은 세대의 고용·주거 불안 등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인 고소득 국가 13곳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신생아 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다.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여성이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출산율을 높이는 핵심이라고 NBER는 분석했다. 성차별적 사회 구조와 가부장 문화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출산율은 올라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역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NBER의 1980년과 2000년의 출산율 연구 결과를 비교했다.
1980년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았다. "일하는 여성은 출산의 기회비용을 따지느라 출산을 꺼린다"는 전통적 논리에 부합하는 결과였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맞춘 수많은 저출생 대책이 나왔다. 2000년엔 반대였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은 국가에서 합계출산율도 높았다.
왜일까. 이른바 '워킹맘'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문화가 출산율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여성의 일과 양육 병행을 장려하는 미국과 노르웨이에선 1980년에 비해 2000년 출산율이 증가했다. 보수적 문화 탓에 일과 양육의 병행이 힘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선 같은 기간 출산율이 감소했다.
NBER는 출산율이 높은 선진국엔 4가지 특징이 있다고 꼽았다. △남성의 적극적인 가사·육아 노동 참여 △워킹맘에 우호적인 사회적 분위기 △정부의 적극적인 가족 정책 △육아를 마친 남녀의 취업 문턱이 낮은 유연한 노동시장 등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남성의 적극적인 가사·육아 노동 참여가 관건이라고 꼽았다. 예컨대 미국은 OECD 회원국 중 정부의 양육 지원 예산이 가장 적고. 정부 차원의 유급 출산 휴가가 없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의 합계출산율(1.64명)은 OECD 평균(1.59명)보다 높았다. 해답은 평균보다 훨씬 높은 미국 남성의 가사·육아 노동 참여율에 있었다. '돈'이 결정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남성의 가사·육아 노동 참여율도, 합계출산율도 OECD 최하위권이다. 2019년 기준 맞벌이 가구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54분, 여성은 187분으로 격차가 컸다.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5분으로, 29개 조사 대상국 중 꼴찌였다. OECD 평균(138분)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한국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은 227분에 달했다. 한국이 매년 합계출산율 최저 신기록을 경신하는 배경에는 여성이 독박 육아를 하면서 집안일도 혼자 다 하는 낡은 현실이 있다는 뜻이다.
결혼을 기피하는 현실도 출산율을 끌어내린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한국 사회 구조상 한국 여성에게 결혼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6월 PIIE가 발간한 보고서 '팬데믹의 장기적 영향: 한국의 재정 및 출산율 전망'에 따르면 25~34세 한국 여성의 대학 졸업 비율은 76%로 OECD 최고 수준이다. 경제적 자립도도 높다. 혼자도 잘살 수 있는데 굳이 "독박 가사노동과 육아를 감내해야 하는 결혼은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결혼시장의 불균형도 문제였다. PIIE는 ①25~34세 한국 남성의 대학 졸업 비율이 64%로 여성과 상당한 차이가 나고 ②남아선호사상 탓에 2020년 기준 20~39세 남녀 성비가 112대 100으로 벌어졌다고 짚었다. PIIE는 "청년기 남녀의 인구·학력 수준 차이로 결혼 시장 불균형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내부적 극복은 어려우니 차라리 '결혼 이민을 장려하라'고까지 권고했다.
PIIE는 한국 정부가 출산율의 단기적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지원에 집중하는 한국 정부의 저출생 정책은 효과가 떨어진다고도 했다.
한국이 당장 시도할 수 있는 유효한 출산율 제고 대책으로는 '비혼 출산(혼외자)의 법적 차별 금지'가 있다. 대부분의 OECD 회원국에선 비혼 출산이 출산율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다.
결혼 여부·가정 형태와 상관없이 임신·출산 혜택을 주는 프랑스는 2018년 기준 전체 출생아 대비 비혼 추산 비율이 60%에 육박했다. 같은 해 미국(39.6%), 스웨덴(54.5%) 등 다수의 고소득 국가에서도 비혼 출산 비율은 전체 출생아의 절반 수준을 차지했다. 금융·세제·복지 혜택을 '법률혼 가정'에만 집중하는 한국에선 비혼 출산 비율이 2.2%로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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