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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드의 '학폭'을 복기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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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프로야구 드래프트는 언제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전체 1순위가 누구인지, 하위 순번에서 극적으로 프로에 합류한 선수는 누구인지, 내가 응원하는 팀에 합류할 새 얼굴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원동력일 것이다. 올해 9월 15일 예정된 2023년 드래프트는 지역 우선 지명제가 폐지되고 전면 드래프트가 부활한 후 처음 열리는 드래프트다. 이제 1순위 지명자는 명실공히 전체 1순위로서 기록에 남게 됐다. 지난해 시즌부터 1순위 지명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오른손 정통파 강속구 투수 심준석이 미국 프로야구 도전을 택함으로써 다음 순번에도 변화가 있을 터. 역시나 강속구 투수로 유망한 오른손 투수 김서현이 유력하다. 2회 연속 투수 최대어를 품에 안을 가능성이 큰 한화가 이에 힘입어 리빌딩에 성공할지 사뭇 기대가 크다.
마운드 달군 ‘악마의 재능’
드래프트가 재미있는 건 그 결과가 순위대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지명 순위가 프로에서의 성적과 직결되는 게 아님은 역사가 말해준다. 신고 선수로 입단해 최고의 스타가 된 선수가 있는가 하면 화려하게 프로에 입단했으나 불운과 부상 등의 이유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사례는 셀 수 없이 숱하다. 반대로 최고의 유망주에서 최고의 선수로 꽃길을 걸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가는 스타도 분명히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팬들은 드래프트를 앞두고 갖가지 가설과 예측으로 설왕설래를 나누다가도 결과가 나온 뒤에는 팀에 입단한 젊은 선수들에게 환영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야구,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거의 모든 인생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생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인간이 만든 조직은 더 그렇고 그 조직이 만든 문화는 더더욱 그렇다. 2021년 드래프트에서 NC에 우선 지명된 김유성은 과거 학교 폭력 가해 전력이 드러나 입단이 좌절됐다. 여론에 부담을 느낀 NC 구단이 연고지 1차 지명을 철회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김유성은 대학 진학을 택했고 대학 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했다. 그리고 올해 전면 드래프트와 함께 신설된 얼리 드래프트(대학 재학 중에 드래프트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프로야구팀의 선택을 받으려 나섰다. 김유성의 기량은 프로행을 의심할 수 없는 상위 순번 수준이라고 한다. 과연 어떤 팀이 그를 택할까. 본디 드래프트라고 하면 설레는 마음으로 누구든 환대하는 분위기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1라운드 중반 순번에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 같다. 뽑는 팀도 뽑히는 선수도 마음 놓을 수 없는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 리그 최고의 투수는 김광현도 양현종도 아닌 안우진이다. 수년째 S급 투수의 세대교체를 기다려온 리그에 단비처럼 내린 젊은 에이스다. 단연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그이지만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가대항전에 국가대표로 선발될 수 없는 신분이다. 고등학교 시절 후배를 폭행해 처벌받았고, 그로 인한 징계가 아직 유효하기 때문이다. 얼마 있지 않아 팬데믹 이후 첫 WBC가 열리는데 대한체육회의 징계 범위에 미치지 않는 이 대회에 그가 뽑혀야 하는지도 다소 논란이 있다. 분명 팀은 물론 리그를 이끌어갈 재능인데 그 재능 앞에 ‘악마의’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이 상황이 달가운 팬이나 관계자는 없을 것이다. 최고의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는 그 스타의 플레이를 보면서 학교 폭력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성가시고 씁쓸한 일이다.
학교 폭력은 실수라고 하기엔 크나큰 잘못이다. 10대 시절 저지른 잘못의 꼬리표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의 이마에 붙어 있는 게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성원, 특히 청소년과 청년 세대가 가진 학교 폭력의 트라우마는 무척 강력해 보인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가볍디 가볍게만 느껴지는데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관심 그리고 보상은 그 고통을 잊을 만큼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 각자가 당한 학교 폭력의 기억과 상처를 수면 위로 드러난 유명인 가해 사실을 폭로하고 벌함으로써 집단으로 해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모 신인 아이돌은 데뷔하자마자 논란 속에 팀을 떠나야 했고, 또 어떤 배우는 계속되는 폭로 속에 촬영 중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하는 일도 있었다.
‘리그’, 학폭의 소환
‘리그’라는 건 리그의 구성원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야구선수는 리그라는 울타리 안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벌을 받으면서도 대체로 야구는 계속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야구로 보답할 길이 생긴다. 같은 이유로 리그는 실수와 잘못에 대한 경각심을 저해시키기도 한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최고의 스타가 된 리그를 바라보는 청소년들에게 학교 폭력은 절대로 금지되어야 할 범죄 행위일까. 어쩌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해프닝에 불과할까. 가해 전력이 있는 선수의 경력을 모두 끊어버리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 반성은 충분히 하되 조직과 문화의 반복된 실수를 되짚어 끊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등학생이 아닌 프로선수들끼리의 폭력과 체벌에 대한 뉴스가 사회면을 장식한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은퇴 선수들은 유튜브 등에 나와 그 시절 횡행했던 폭력의 기억을 무슨 미담이나 추억을 재생하듯 쉽게 말한다. 그때는 다 그랬다면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를 때리고 선배가 후배를 집합시키는 걸 자연스러운 관행처럼 여긴다. 이러한 문화가 쌓이고 쌓여 2022년 오늘, 리그의 축제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야구 기록이 아닌 학교 폭력 기록을 찾아보게 된 현실을 만든 것이다.
가해자는 아마도 상위 순번 어디쯤에서 지명받을 것이다. 그가 프로에서 통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느 레벨의 선수가 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중계 화면에 잡혔을 때 직접적인 피해자는 물론이고 학교 폭력의 아픈 기억이 있는 모두의 상처를 다소간 들춰낼 것은 분명하다.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 악독하게 굴었던 녀석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먹고사는지 몰라 다행이라 여길 뿐이다. 녀석은 처벌받지 않았고 녀석으로 인해 생긴 피해자는 그저 견디고 버티는 게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야구선수는 다르다. 그들은 계속해서 노출될 것이고, 야구를 어지간히 하면 은퇴하지 않을 것이며, 야구를 대단히 잘하면 과거는 희미해지고, 수십억 원을 버는 스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아니 리그는.
"야구는 학폭에 반대합니다" 가능할까
2019년 EPL은 '레인보우 레이스'를 펼쳤다. 주장 완장과 LED 보드, 교체 번호판까지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뜻하는 무지개색으로 반짝였다. 세계의 많은 프로 리그는 종목을 막론하고 인종차별에 맞서는 캠페인을 벌인다. 선수 개인은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로 신념을 내비치고 리그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구호를 광고판에 써서 내보낸다.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구성원은 퇴출도 할 수 있다. KBO가 당장 다음 시즌부터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면 어떨까. 1980년대 프로야구가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듯이, “야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와 같은 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물리적 폭력은 물론 집단따돌림, 사이버불링, 성폭력까지. 특히 청소년에게 행해질 수 있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는 캠페인이라면 야구의 선한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위와 같은 ‘프로야구의 반폭력 운동’ 아이디어에는 몇 가지 장애물이 있다. 우선 땅바닥에 배트를 내던지는 등의 폭력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캠페인 중에 벤치클리어링이라도 일어나면 민망하고 곤혹스러울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도박과 같은 일탈 행위가 나와서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로 지금, 프로야구단 내에 폭력 행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문제다. 그러니까, 이 캠페인, 정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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