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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정신질환으로 고통"...로힝야족은 오늘도 절규한다[인터뷰]

입력
2022.08.25 19:30
수정
2022.08.26 14:33
23면

김태은 국경없는의사회 협력관 인터뷰
25일, 로힝야족 학살사태 5주년
난민 생활환경 최악...의료·인권 등 엉망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촌이 지난해 3월 일어난 화재로 타버린 모습. 대나무로 지어진 셸터는 흔적만 남았다. 월드비전 제공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촌이 지난해 3월 일어난 화재로 타버린 모습. 대나무로 지어진 셸터는 흔적만 남았다. 월드비전 제공

미얀마 라카인주(州)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무슬림 로힝야족의 평온한 일상은 2017년 8월 25일을 기점으로 무자비하게 파괴됐다. 로힝야족은 군부의 탄압과 폭력을 피해 이웃 나라 방글라데시 등으로 도망쳤다. 로힝야 난민은 지난달 22일 유엔난민기구(UNHCR) 조사 기준 93만6,733명까지 늘었다. 단일 난민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시간이 흐르며 로힝야족의 고통은 잊혔다.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더 까맣게 지워졌다.

절망의 끝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기억하고 돕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의 김태은 인도적 지원 총괄협력관이 6, 7월 난민들을 만나러 갔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에서 국제기구 인사들을 만나 난민촌의 의료 지원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한국에 있는 그를 24일 전화로 만났다.


지난달 로힝야족 난민들이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병원의 외래진료 대기실 앞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지난달 로힝야족 난민들이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병원의 외래진료 대기실 앞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로힝야 난민촌의 의료·방역 상황은 어떤가.

"난민촌에선 코로나19 환자가 요즘도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백신 사재기로 인해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아닌 각종 감염병도 창궐한다. 가장 심각한 건 옴 진드기병이다. 옷과 침구를 세탁하지 못하고 밀집해 살다 보니 가족끼리 기생충을 옮기는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

-적절한 의료 지원은 이뤄지고 있나.

"국경없는의사회가 난민촌에 의료시설 9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감염병 치료도 벅찬 상황에서 최근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자까지 쏟아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등은 최근 정신 보건 지원 업무를 강화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 난민 캠프의 대나무 움막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 난민 캠프의 대나무 움막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난민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나.

"난민들이 처한 현실은 외신 사진에 찍힌 것보다 훨씬 더 비참했다. 대나무로 벽을 만들어 비닐로 천장을 가린 움막에서 사는데, 주방과 침실의 경계도 없다. 식수는 보급받는데, 지원량이 부족하다 보니 공평하게 배급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수제품을 만들어 타카(방글라데시 화폐)를 벌어들이기도 한다. 가장 흔한 밥벌이는 배급된 음식을 다 먹지 않고 상태가 좋은 것을 모아 뒀다 시장에 파는 것이다."

-최근 난민들이 미얀마 본국 송환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로힝야족의 절규를 가는 곳마다 들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집에서 가족들과 사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을 누군들 꾸지 않겠나. 난민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가 자신들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로힝야족은 삶의 터전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시민권을 달라는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로힝야족이 그리는 미래는 무엇인가.

"아쉽게도 미래를 꿈꿀 여력 자체가 없어 보였다. 대가족 문화여서 아이들을 많이 낳지만,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미성년 자녀들을 일찍 결혼시키는 것으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는 수준이다. 한국인들은 현재 난민 문제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로힝야족의 아픔이 언제 '우리의 아픔'이 될지 모를 일이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너무나 절실하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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