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어릴 적 누구나 중얼거렸을 이 동요는 밤하늘을 점점이 수놓은 별빛을 바라보던 동심을 상기시킨다. 쉼 없이 깜박거리는 별들의 모습은 밤하늘을 역동적인 무대로 만들어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그러나 이 깜박거림은 지상에서 별과 은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저주에 다름없다. 왜냐하면 별 자체는 깜박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짝임의 원인은 바로 지구를 감싼 얇은 대기다. 대기는 지표면의 기압 차에 따른 국소적인 바람에서부터 난류나 지구적 규모의 제트기류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흐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로 인해 공기의 밀도가 순간적으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난류에 의한 대기의 밀도 변화는 공기의 굴절률도 변화시킨다.
굴절률은 과학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질의 성질 중 하나다. 이름이 의미하듯 어떤 물질의 굴절률은 해당 물질에 비스듬히 입사한 빛을 꺾어 진행 방향을 바꾸는 정도를 의미한다. 유리보다 굴절률이 훨씬 높은 다이아몬드는 입사하는 빛을 더 많이 굴절시킨다. 물속에 있는 물체가 실제보다 얕은 위치에 있는 듯 보이는 것도 빛의 굴절 현상과 관련 있다.
공기도 미약하나마 굴절률을 갖는다. 따라서 난류로 인해 공기의 굴절률이 갑자기 변하면 별빛도 순간적으로 미세하게 방향을 튼다. 대기를 뚫고 직선으로 와야 할 별빛이 공기의 요동으로 인해 순간순간 방향을 살짝 바꾸니 우리 눈에 별빛은 끊임없이 깜박거리는 존재로 보인다.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에게 요동치는 대기는 별빛의 신비를 감추려는 자연의 저주처럼 보일 것이다. 과학자들이 대기의 영향이 없는 우주로 망원경을 쏘아 올리려는 것도 결국 이 저주를 피하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물론 지상에 있는 천체망원경의 경우에도 별빛의 깜박거림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어 적용되고 있다. 별빛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측하며 망원경의 주거울을 구성하는 조각 거울들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해 깜박거림을 제거하는 적응광학 기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공기의 요동이 심하지 않은 경우에 효과적이다. 커다란 기단이 지나가며 거대한 난류가 생기는 상황에서는 측정 데이터를 통째로 버려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고 한다.
지난달 열린 천체망원경과 관련된 기술을 다루는 한 국제학회에서는 대기의 난류에 대한 측정 데이터를 활용해 지상에 있는 천체망원경의 관측 정밀도를 높이는 다양한 연구가 소개되었다. 대기의 난류는 바람의 변화, 공기 중 온도 분포, 지표의 지형학적 형태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받는다. 이번 학회에서 한 연구팀은 지구적 차원의 기후 모델과 날씨 데이터를 이용해 지구 스케일의 대기 난류 지도를 작성하고 난류의 패턴을 예측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해당 연구진은 이 모델을 이용해 지구 차원에서 일어나는 난류 패턴을 며칠 앞서서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예측 모델의 신뢰성이 더 높아지면 천문학자들은 난류가 덜 형성되거나 난류의 패턴 예측이 쉬운 지역을 천체 관측지로 선정할 수 있다. 게다가 난류가 빛의 진행에 끼칠 광학적 효과를 미리 파악함으로써 천체망원경을 관측에 최적인 상태로 미리 조정할 수도 있다. 이런 효과는 특히 매우 잠잠한 대기 조건이 중요한 대상, 가령 모성의 강한 빛에 큰 영향을 받는 외계행성의 관측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류에게 대기는 해로운 전자기파와 우주선을 막아주는 든든한 방패이자 그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의 존재다. 그러나 흐르는 유체인 대기가 불가피하게 동반하는 난류는 지상에서의 천체 관측에 근본적 한계로 작용해 왔다. 적응광학에 더해 이제 기후학과 천문학의 멋진 결합으로 이 근본적 걸림돌이 제거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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