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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퍼스트 레이디'가 아니야" [세상의 관점]

입력
2022.08.31 17:00

<6> 미드 '퍼스트 레이디'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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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을 방문해 입원 치료 중인 국가유공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을 방문해 입원 치료 중인 국가유공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이 기사의 제목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캠프가 내걸었던 선거 운동 문구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를 차용했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의 기자회견 중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보도가 연일 주요 매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김 여사는 대선 당시 학력 위조 논란으로 구설에 오르자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발짝 물러나 '조용한 행보'를 예고했었는데요. 이에 당시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실제 폐지했습니다.

영부인을 둘러싼 공적 조직과 역할을 축소하기만 하면 풀릴 문제가 아니었나 봅니다. 영부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제2부속실 폐지는 엉뚱하게도 김 여사의 측근을 중심으로 한 '비선 활동설'로 번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윤 대통령의 대외비 일정이 김 여사의 팬클럽 '건희사랑'을 통해 유출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영부인의 '광폭 행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러나 영부인의 '광폭 행보' 그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일까요. 오히려 대통령실이 김 여사 관련 논란과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제2부속실 폐지' '조용한 내조'처럼 묘수만 찾으면서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형국입니다. 오늘 허스펙티브는 영부인의 '조용한 내조' '광폭 행보' 같은 일차원적 논의에 매몰된 한국 정치가 정면교사로 삼을 만한 미국 드라마를 소개합니다.

여기,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남편보다 훨씬 더 선망을 얻고 사회의 진보를 이끌며 국민의 기억 속에 남은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3인이 있습니다. 드라마 '퍼스트 레이디(왓챠 방영)'의 등장 인물들은 남편을 내조하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확장해가며, 남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러닝메이트로 자리매김합니다.

드라마 '퍼스트 레이디' 포스터. 왓챠 제공

드라마 '퍼스트 레이디' 포스터. 왓챠 제공

첫 번째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1933~1945) 대통령을 지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입니다. 그 자신도 훗날 유엔 인권위원회 의장으로 세계인권선언을 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언론사가 여성 기자를 거의 고용하지 않거나 여성 기자에 그리 중요한 역할을 맡기지 않던 시대, 그는 월요일마다 여성 기자만 초청해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특종이 나오기 시작하자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여성 기자를 고용합니다.

두 번째 영부인. 제38대 미국 대통령(1974~1977년) 제럴드 포드의 아내 베티 포드는 여성 인권 운동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완전한 여성성'에 대한 강박이 여성들의 자기 결정권보다 우선했던 시기, 유방암 진단 사실을 공개하고 유방 절제 수술을 받습니다. 여성 인권 운동이 활발했던 1970년대, 남녀 동등 헌법 개정안(ERA)과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권을 지지하는 등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동시대 인물로, 우리 사회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시민사회 활동가이자 정치인 남편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선 것을 시작으로,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에 앞장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드라마는 백악관 안에서의 미셸뿐만 아니라, 성장 환경에서 '똑똑한 흑인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부조리를 낱낱이 재현합니다. 계급과 인종 차별이 존재하는 한, 여성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경험을 하는 여성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남성 중심의 미국 정치에 혜성처럼 등장해 영부인의 역할을 만들어간 이 여성들은 결코 '내조하는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보기 좋은 영부인으로 남기를 철저히 거부하고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개척한 이 영부인들의 이야기는, 관습적으로 그림자 내조를 현명한 영부인의 미덕 혹은 논란에 휩싸인 영부인의 도피 수단 정도로 여겨온 한국 사회에 교훈을 줍니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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