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등에 탄 실용주의자 이재명

입력
2022.08.2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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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오후 광주 서구 5·18 기념공원에서 열린 '이재명과 위로 걸음' 행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지자들에게 손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유력 당권주자인 이재명 의원은 당대표가 되면 개딸(개혁의 딸)이 바라는 강경 일변도 정치, 국회 과반 의석을 앞세운 입법 독주에 나설까. 강경파 초선의원 모임인 ‘처럼회’ 대장처럼 행동하는 건 아닐까.

기자가 만난 이 의원과 가까운 정치인들은 이런 전망에 "기우"라고 입을 모았다. "그는 알려진 것처럼 과격하지 않다. 민생과 실용에 충실하고,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정치인들과 달리 대의명분이나 의리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다"는 것이 이들 설명이다.

실제 이 의원 정치 행적을 돌아보면 이념보다 실용, 일관성보다는 유연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규제 위주 부동산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양도세 중과 한시 유예 △종합부동산세 조정 △공시가격 인상 속도조절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 공약을 제시해 친문재인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민주당에서 금기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 평가도 거침없이 내렸다. 이 의원은 전씨에 대해 “광주 학살 주범”이라면서도 “삼저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 게 맞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기본소득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반응이 신통치 않자 뒤로 물렸다. 말 바꾸기란 비판이 무성했지만 뱉은 말을 지키겠다며 설익은 공약을 강행하는 대신 유연성을 발휘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지난달 "부자를 배제할 필요가 없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는 민주당 정체성을 저버리려 한다는 당내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겠다는 실용주의 면모로도 볼 수 있다.

이런 민생·실용 노선에 비춰 볼 때 이 의원이 강성 지지층에 휘둘려 선명성만 좇는 정치를 할 여지는 적다는 것이 이 의원 주변 인사들의 평가였다. 물론 반대 견해도 있었다. 한 의원은 "이 의원이 대선 패배 이후엔 사람을 만날 때도 휴대폰만 쳐다볼 때가 많다"고 전했다. 개혁적이면서도 실용적이었던 면모가 팬심 확보를 위한 개딸과의 SNS 소통에 전념한 뒤로 빛이 바랬다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대권 재도전을 노리는 이 의원에게 민생·실용 노선은 아직 버릴 수 없는 카드일 것이다.

새 지도부가 민생·실용 노선을 가려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역설적으로 현재 이 의원을 압도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개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새 지도부에 김건희 여사 특검과 한동훈·이상민 장관 탄핵, 제2의 검수완박 입법 마무리, 꼼수 탈당 논란을 일으킨 민형배 의원 복당 등을 우선 과제로 요구할 것이다. 개딸이 이 의원을 지지한 것은 그를 이런 과제를 추진할 적임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민생·실용 가치와 개딸의 요구가 충돌할 때 이 의원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여의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개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에도 개딸은 계속 이 의원 편에 설 것인지도 궁금하다. 한 중진 의원은 "이 의원도 당을 꾸려가다 보면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비이재명계나 중도 성향 의원들을 비하하는 은어) 소리를 듣고 문자 폭탄을 받을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이 의원이 호랑이 등에 탔다는 평가가 실감난다.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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