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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되게 오래 일하잖아"

입력
2022.08.25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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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가 출근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가 출근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방탄소년단(BTS)이나 오징어 게임만큼이나 유럽인들이 한국에 흥미를 느끼는 소재 하나를 발견했다. 일하는 시간이다. 한국인과 일을 좀 해봤거나, 한국인과 일을 좀 해본 사람을 아는 이들은 확신에 차서 말한다. "너희 되게 오래 일하잖아, 그렇지?" 한 독일인은 "한국인은 밤에도 업무 메일을 보내는데, 그렇게 하면 돈을 더 받는 거야?"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한국인의 열심을 시간 투입 면에서만큼은 인정하는 것 같았다.

한국인은 객관적으로 봐도 오래 일하긴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근로시간은 1,928시간.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길게 일하고, 평균 근로시간(1,500시간대)은 가볍게 뛰어넘는다.

안 그래도 오래 일하는데, 이제 더 오래 일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 52시간 제도를 고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큰 틀은 유지하되 필요나 조건에 따라 노동시간을 유연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현장에서는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된 지 4년이 지나도 제대로 정착이 안 됐는데 그마저도 고치면 근로문화 전체가 후퇴하는 건 불보듯 뻔하다'고 걱정한다.

국제사회에서는 근로시간 줄이기 경쟁이라도 벌어진 듯하다. 효율성을 전제로 해야 하지만, 어쨌든 일에 시간을 더 적게 투입하는 건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OECD 기준)인 멕시코에서조차 최근 하루 6시간 근로 제한을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외국으로 갈 것도 없이 국내에서도 그런 흐름이 이미 짙다. 주 4일 제도는 대선후보 공약으로도 나왔었고, 기업들도 근로시간 줄이기에 속속 동참 중이다.

정부는 '근로시간 늘리기'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주 52시간 제도가 폐지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절대 없다"(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고 아무리 말해도, 대선후보 시절 윤 대통령의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와 같은 발언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인지, 국민적 불신은 자꾸만 커져 간다.

물론 고쳐야 할 부분이 뻔히 있는데 그냥 둬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개혁 작업이 도릴 부분만 도려내기를 바랄 뿐이다. 상명하복과 눈치 문화가 얽힌 공간에서 타의로 이뤄진 열심, 누군가가 40시간만 일하는 동안 누군가는 죽도록 일해야 하는 양극화를 그냥 두어도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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