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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 외면당하는 트라우마, 누구에게나 올 수 있어" [마음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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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는 비 소식만 들려도 불안해. 먹구름만 몰려와도 무섭더라니까."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설렁탕을 파는 상인 정모(58)씨가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8, 9일 이수역 일대는 유례없는 물폭탄을 맞았다. 이틀간 쏟아부은 비의 양은 시간당 200㎜에 가까웠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정씨처럼 이번 침수 피해 이후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재난 후 심리적 후유증은 불안감, 불면증, 우울증, 무기력, 분노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트라우마는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생명, 신체적 안녕에 위협되는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말한다. 만약 극도의 불안, 공포, 고통 반응이 한 달 이상 사라지지 않아 일상에 지장이 초래된다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최대 수년 이후 발병하기도 한다.
실제로 경북 포항시가 2017년 11월 15일 포항 지진(규모 5.4)을 겪었던 주민 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난으로 인한 충격으로 '심리적 불안감과 후유증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고 응답한 이는 42.9%에 달했다. 하지만 전체 응답자 중 10.4%만 재난심리지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오후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만난 백종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최근의 대형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으로, 재난 피해자들은 제때 심리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트라우마에서 헤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개 트라우마라고 하면 교통사고, 범죄, 사별 등 개인적인 사건을 원인으로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에 발생하는 재난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등 '자연재난', 세월호 침몰과 같은 '인적 재난', '사회적 재난'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경우 자연재난으로 촉발했지만 원전 사고에 대한 잘못된 대응 등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전에만 해도 재난 상황에서 국가는 신체적 치료 제공을 우선했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재난이 초래한 물적 피해 외에, 정신건강을 비롯한 인적 손실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당일 밤, 안산에 위치한 병원에 도착한 생존자들은 신체적으로 다친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이후 대형 재난 발생 시 정부 차원에서 심리지원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문을 열었다. 4·3트라우마센터와 같은 국가 차원의 역사적인 센터들은 모두 최근 10년 안에 만들어졌다. "이전엔 재난을 당해도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됐는데 지금은 정신적 치유와 회복을 위한 여러 지원이 재난 계획에 포함됐습니다."
물론 가야 할 길은 아직 남아 있다. 2018년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될 때 고급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예산이 부족한 탓에 채용 인력은 대부분 무기계약직이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안산온마음센터의 경우 정부가 위탁 병원을 선정하는 식으로 운영되면서 전문가들의 인력 배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트라우마센터 직제가 고용안정성을 보장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또 배·보상금에 정신질환 등의 진단·치료비가 포함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9·11 테러 유가족의 경우 보상금에 치료비가 포함돼 있지 않아 평생 정신과 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치료비가 보상금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보상이 종결되고 나면 자부담으로 치료해야 하고, 또 피해자가 직접 얼마나 아픈지를 입증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이들이 호소하고 있는 무기력과 우울도 아직 현재진행형인 '재난 트라우마' 이슈다. "재난 시 취약계층이 가장 피해를 보는데, PTSD나 우울증 환자들도 그중 일부입니다. 특히나 공황장애를 겪었던 분들은 사회적 격리로 인해 재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트라우마와 PTSD가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외상후성장(PTG)도 거론되고 있다. "트라우마 이후 성숙이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성장보다는 고통을 더 크게 겪기에 PTG라는 용어 자체도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실제로 9·11 테러 이후 장기 추적 조사 결과 20~30%의 피해자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했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백 학회장은 연대와 공감을 강조한다. 그 출발은 비슷한 아픔을 겪은 동료상담에서 시작될 수 있다. 2005년부터 미국 보훈부는 제대군인 정신건강지원을 제공하는데, 이들 중 핵심인력이 제대군인 출신 동료상담가들이다. 미국은 중증정신질환 대상 지역사회의 적극적 치료프로그램팀에서 또한 동료상담가 채용이 필수적이다. "트라우마나 중독 등을 겪어 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분명 있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동료상담가를 현장에 내보내면 오히려 병이 그들에게서 재발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모니터링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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