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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1000억 가로챈 집주인... 정부, 전세사기 '동시진행' 정조준

입력
2022.08.24 14:00
수정
2022.08.24 14:1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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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덫, 전세 사기] 이후
국토부, 파렴치 집주인 1,036명 적발
대부분 동시진행으로 전세금 가로채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정부가 전세 사기의 핵심 고리인 '동시진행' 방식으로 세입자를 들여 보증금을 떼먹은 집주인들을 대거 적발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현재 서울·수도권에서 진행 중인 신축 빌라와 오피스텔 분양은 90% 이상이 동시진행 매물로 업계는 추정한다. 이에 따라 이번에 정부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은 분양업자와 건축주가 앞으로 줄줄이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를 걸로 예상된다.

국토부, 파렴치 집주인 1,034명 적발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국토교통부는 1만3,961건의 전세 사기 의심정보를 경찰청에 전달했다고 24일 밝혔다. '세 모녀 전세 사기' 사건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전세 사기 일벌백계"를 지시한 후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처음으로 전세 사기 단속에 나선 결과다.

한국일보는 이달 1일부터 '파멸의 덫, 전세사기' 시리즈 보도를 통해 '깡통 전세(전셋값≥매맷값)'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시중에서 어떤 경로로 거래되는지 세세히 파헤쳤다. 이 과정에서 동시진행이 전세 사기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정부도 본보 보도에 착안해 단속을 벌여 1,034명의 파렴치 집주인을 적발했는데, 실제 이 중 상당수가 동시진행 방식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동시진행은 아파트에 견줘 매매가 어려운 빌라(신축·구옥)를 팔기 위해 고안된 분양 기법이다. 신축이라도 빌라나 오피스텔 매매 수요는 없지만 전세 수요는 많은 만큼 세입자를 끌어들여 이들의 전세금으로 분양대금(매맷값)을 치르는 것이다. 특히 신축 빌라는 일정한 시세가 없어 민간 감정평가기관을 동원해 주택가치를 뻥튀기하기도 쉽다. 이처럼 분양업자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정가격을 부풀려 최대한 전셋값을 높여 받는 터라 동시진행 매물은 시작부터 깡통 전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임차인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해 보증금을 돌려받긴 하지만, 결국 분양업자의 불로소득을 국가가 보전해준다는 게 문제다.

불로소득 결국 정부가 보전… 떼인 돈 6,925억 원

정부가 단속에서 적발한 악성 집주인 A씨 사례. 전형적인 동시진행이다. 국토부 제공

정부가 단속에서 적발한 악성 집주인 A씨 사례. 전형적인 동시진행이다. 국토부 제공

실제 국토부가 적발한 집주인 1,000여 명 중 200명이 이런 사례다. HUG가 세입자에게 우선 보증금을 돌려주고(대위변제) 이후 집주인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는데(구상권), 집주인이 돈을 갚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HUG가 악성 집주인에게 떼인 돈만 6,925억 원에 이른다. 정부는 200명 중 장기간 빚을 갚지 않아 집중 관리 대상으로 지목된 26명(4,507억 원)은 경찰에 직접 수사를 의뢰했다.

이번 국토부 단속에서 동시진행 방식으로 세입자로부터 1,000억 원을 챙긴 악성 집주인 A씨도 걸려들었다. A씨는 분양업자와 짜고 신축 빌라 시세를 부풀려 전셋값을 매맷값보다 높인 뒤 세입자 500명을 들였다. 그러고 나선 전세금 반환 능력이 없는 '무갭(전셋값으로 매맷값 해결)' 투자자, 즉 '바지 집주인'에게 주택 명의를 넘기고 잠적했다. 이후 전세 사고가 터졌고, HUG가 바지 집주인 대신 100여 가구에 전셋값 300억 원을 대위변제했다.

단속에 걸려든 나머지 집주인 825명(보증금 1조581억 원)은 정부의 자체 실거래 분석에서 전세 사기 의심 거래로 포착된 경우다. 임대차 계약 직후 집을 사고파는 거래였는데, 이 역시 동시진행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동시진행의 마지막은 분양업자가 바지 집주인에게 주택 명의를 넘기는 단계다.

신축빌라 동시진행 어떻게 이뤄지는지 봤더니. 그래픽=김문중 기자

신축빌라 동시진행 어떻게 이뤄지는지 봤더니. 그래픽=김문중 기자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에 찾아보니 동시진행이 판을 치고 있었다"며 "동시진행이 두드러진 지역을 공개하는 방안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본보는 분양업자들만 모여 있는 카톡방(7월 1~27일)을 공개했는데, 방에선 "동시진행 업자들 잡아들이면 최소 교도소 하나 더 열어야 할 듯", "새로 만든 교도소에서 새로운 동시(동시진행)가 만들어지겠죠" 같은 글이 적잖게 올라왔다. 그만큼 동시진행이 만연해 있고, 그들 역시 불법이란 걸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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