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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린 듯 가세연에 쌈짓돈 후원했는데..." 달동네 구독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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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메일 보내서 담당자와 소통했는데, 왜 아직도 돈을 안 돌려줍니까."
"선생님, 제보메일과 업무메일은 달라요. 업무메일로 보내셨어야죠."
"자기들이 답장해 놓고는, 야 이 더러운 XX들아. 니들이 그러고도 매일 남 헐뜯고...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아. 니들이 좌파를 욕해? 똑같은 놈들이!"
"왜 선생님이 잘못하시고 화를 내세요? 기다리면 보내드린다니까요!"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달동네'의 다세대주택 단칸방에서 홀로 사는 박영춘(60·가명)씨 집에선 22일 오전부터 또다시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를 부여잡은 박씨는 도무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호흡이 가빠져 뒷말이 잘 나오지 않는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화기 너머 상대방은 시종일관 차분하고 냉정한 목소리였다.
박씨를 열 받게 만든 건 60만 원. 누군가에겐 '한 번 버렸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돈이지만, 고정 수입이 없는 차상위계층 박씨에겐 큰맘 먹어야 쓸 수 있는 거금이다. 박씨는 지난해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후원계좌로 금쪽 같은 돈을 송금했다. 가세연이 내건 대업, '4·15 부정선거 무효소송'을 위한 후원이었다.
하지만 한때 가세연을 믿고 의지한 만큼 충격도 컸다. 박씨는 현재 집안을 뒤덮은 서류더미 속에서 살고 있다. '원하면 환불해준다'는 가세연 측 약속에 따라 증빙서류만 있으면 언제든 돈을 돌려받을 줄 알았지만, 1년 반이 넘도록 바뀐 것은 없었다.
박씨는 2019년 '보수 유튜브가 뜨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매일 가세연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는 열성 구독자가 됐다. 가세연은 2020년 4월 제21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사전투표 수와 용지가 위조됐고 △투표분류기와 서버 등이 전산 조작됐으며 △투표함이 바꿔치기 됐다는 등의 '4·15 부정선거' 의혹을 들고 나왔다. 신문 구독도 모두 끊고 유튜브에 빠져든 박씨는 가세연 부정선거 특집방송을 보며 "세상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됐다.
가세연은 전국 단위 부정선거가 의심된다며 선거 무효소송 후원 계좌를 열고 돈을 모았다. "선거구 한 곳당 2억 원의 소송 비용이 든다" "100여 개 선거구에 전부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채널 커뮤니티(게시판)에 후원 안내글도 올렸다. 박씨는 출연자들 입에서 '모자라다'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홀린 듯 후원금을 보냈다. 그는 "2020년 4월에 처음 돈을 보낼 때만 해도 수십 번 고민하고 3만 원을 보냈다"며 "그런데 가세연 출연자들이 자꾸 힘들다고 하니까, 나도 마음이 급해져 추가 송금을 했고, 9월이 되니 총 60만 원을 보내놨더라"고 돌아봤다.
지난달 28일 대법원은 4·15 부정선거 의혹을 검증한 결과를 내놨다. 그간 일부 선거구 증거보전 신청 등이 요건 미달로 각하된 경우는 있었지만, 원고 측 주장을 검증한 것은 처음이었다. 대법원은 민경욱 전 의원이 인천 연수구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낸 무효소송에서 "원고는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증명하지 못했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부정선거 모금' 후원자 대부분은 가세연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날 아침부터 대형 버스를 대절하고 나타난 보수단체 회원 100여 명은 대법원 앞에서 선관위 규탄 시위를 벌였다. 부산지역 고교 출신들과 함께 시위에 참석했다는 김모(70)씨는 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기각된다면 대법관 문제"라고 못 박았다. 김씨는 "동창들끼리 돈을 모아 가세연 부정선거 모금에 50만 원을 냈다"며 "나라가 어려우니 자발적으로 낸 것이지 후원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재판부가 썩었다" "간첩 대법관, 선관위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선관위 서버 현장검증과 재검표 결과, 43쪽에 달하는 판결문도 이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씨에게 "소송이 기각됐는데 소송 명목으로 낸 후원금은 어떡하냐"고 묻자 "나라를 위해 낸 돈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세연이 그동안 유명인사의 실명을 언급하며 주장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명난 경우가 적지 않다. 가세연 구성원들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수차례 기소되고 송치되고 있다. 김용호씨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여배우의 연관성을 주장했다가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과 배우 한예슬씨 등이 가세연을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씨 등은 올해 4월 나란히 검찰에 송치됐다.
그럼에도 상당수 구독자들에게 이런 사례는 후원을 철회할 근거가 아닌, 오히려 더 큰 지지를 보내야 할 이유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지난 광복절 기념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가세연 지지자 신모(59)씨는 본보 통화에서 "가세연 멤버들이 자꾸 (수사기관에) 끌려가는 건 바른말을 하니까 탄압받는다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위로 드러난 방송을 믿고 후원금을 냈다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신씨는 "(가세연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낸 것이니 벌금으로 쓰든 어떻게 쓰든 상관없다"고 답했다.
신씨의 반응은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가세연 멤버 3명은 이인영 전 장관 등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이날 서울 강남경찰서 앞에서 가세연 멤버들이 풀려나길 기다리던 50대 여성 지지자 김모씨는 본보에 "(가세연 영상이) 도움이 되고 좋으니까 후원하는 거지, 이런(경찰 조사) 것들은 언론에서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김세의씨와 강 변호사는 지지자들의 환호와 포옹 속에 귀가했다. 당시 가세연이 경찰에 체포되는 모습을 생중계하며 벌어들인 슈퍼챗 수입만 1,200여만 원이었다.
박씨는 신림동 자택에서 3,800여 개에 달하는 가세연 영상 목록을 보면서 혹시라도 후원금 환불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고 있었다. 지난해 3월 가세연 유튜브 방송의 한 고정 출연자는 내부 폭로 영상을 올려 "부정선거는 거짓 선동이고, 후원금도 목적과 달리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상을 본 직후 박씨는 가세연에 환불 요청 메일을 보냈지만, 가세연은 '입금 일시를 알려달라'는 답장을 마지막으로 박씨에게 어떤 연락도 주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박씨는 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청해보기도 했다. 그는 가세연 출연자들이 거듭 강조했던 "원하면 환불해준다"는 약속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공단 관계자가 "정치적 사건은 다루지 않는다"며 박씨를 돌려보냈다가, 박씨가 "이건 정치 문제가 아니다"라며 거듭 항의하자 "가세연이 상담자(박씨)를 특정해 환불을 약속한 게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답을 내놨다.
박씨가 느끼는 배신감은 그가 가세연에 걸었던 기대만큼 깊었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부동산 사기를 당해 집안이 망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세상을 비관하며 살았다"며 "썩은 세상을 가세연이 바꿀 수 있다고 믿어 없는 형편에 매달 1만 원씩 후원금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매달 차상위계층에 지원되는 문화지원금 10만 원에 사비를 보태 가세연 제작 뮤지컬 '박정희'를 두 번씩 관람하기도 했다. 그는 "믿었던 가세연에 결국 아버지처럼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며 허탈해했다.
◆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1. 평산마을의 여름 한 달간의 기록
2. 팬덤이 쌓아올린 그들만의 세계
3. 불순한 후원금, 선의와 공갈 사이
4. 정치권, 필요할 땐 이용하고 뒷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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