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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로 변신한 구명의 낙하산

입력
2022.08.2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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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낙하산 결혼식

2차 세계대전 중 한 미국 파일럿은 자신의 목숨을 구한 낙하산을 약혼자에게 선물했고, 그 천으로 만든 사진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결혼식을 올렸다. si.edu

2차 세계대전 중 한 미국 파일럿은 자신의 목숨을 구한 낙하산을 약혼자에게 선물했고, 그 천으로 만든 사진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결혼식을 올렸다. si.edu

1939~40년 미국 뉴욕 퀸스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첫해 주제는 ‘내일의 세계 건설’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듬해 주제는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로 바뀌었다. 1939년 4월 말부터 1940년 10월까지 열린 그 행사에는 약 60개국 다수 기업 등이 참여했고, 유료 관객도 55만 명에 달했다. 장거리 전화, 전자식 착유기 등이 눈길을 끈 전시품이었고,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박람회장 오락 존에서는 음란성 누드쇼가 열리기도 했다.

전쟁의 기미는 1940년 8월 25일 박람회장에서 진행된 이른바 낙하산 결혼식에서 엿볼 수 있었다. 예식은 신랑과 신부(Arno Rudolphi와 Ann Hayward)뿐 아니라 주례를 선 목사와 두 명의 들러리, 웨딩마치를 연주한 4명의 연주자가 모두 낙하산에 매달린 채 치러졌다. 낙하산이 쓰이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정된 낙하산을 이용한 공중 결혼식이었다.

전시 배급제가 시작되면서 영국과 미국에서는 낙하산 천을 재활용한 드레스가 유행했다. 전쟁 전까지 낙하산은 주로 일본 수입품 실크를 소재로 제작됐기 때문이었다. HBO의 2차 대전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한 공수부대원이 보조 낙하산을 배낭에 매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그 병사는 "영국에 돌아가 약혼자에게 선물할 거야. 실크잖아. 멋진 웨딩드레스 감이지"라고 말한다.

전쟁 발발 후 낙하산 소재는 나일론으로 바뀌었다. 수입도 당연히 중단됐지만 실크로 그 엄청난 물량을 댈 형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일론도 웨딩드레스 소재로 쓰였다. B-29 폭격기 파일럿 클로드 헨싱어(Claude Hensinger)는 1944년 8월 일본 본토 폭격 직후 엔진 고장으로 탈출, 낙하산 천을 담요 삼아 버티다 구조됐고, 그 낙하산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신부(Ruth)와 1947년 7월 결혼했다. 끈을 당겨 낙하산 주름까지 살린 그 드레스는 현재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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