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보장 vs 재산권 침해"... 노란봉투법, 이번엔 물꼬 트일까

입력
2022.08.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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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하이트진로 파업으로 재부상
파업 손배 범위 제한에... 기업 "재산권 침해"
여야 모두 신중... 정기국회 처리 산 넘어 산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1차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 봉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1차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 봉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지난달 22일 노사 합의로 51일 만에 마무리됐지만, 사측은 하청노조 피해 추산금액(약 8,165억 원)을 근거로 파업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보인다. 파업 하루당 약 160억 원꼴인 셈이다. 이처럼 한 달간 조선소 제1독(dock) 점거 농성까지 벌여가며 기존 요구인 임금 30% 인상에서 크게 못 미치는 4.5% 인상을 얻어냈음에도 사측의 '손해배상'이란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100일을 넘긴 하이트진로 파업에서도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는 또 다른 갈등 요소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조합원 11명을 상대로 27억7,6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노조는 사측이 소를 취하하지 않을 경우 파업을 이어가겠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고, 지난 16일 하이트진로 본사 1층과 옥상을 기습 점거하기도 했다.

野 "노란봉투법, 정기국회서 처리를"

이 같은 파업 후 손해배상 문제는 최근 사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은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범위를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야권의 주장대로 개정안이 원안대로 국회에서 처리된다면, 사측은 파업과 관련해 노조나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시행까지는 첩첩산중이다. 19대 국회인 2016년 당시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의원의 발의안을 시작으로 20·21대 국회에서도 해당 법안은 발의됐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현실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여당과의 합의 처리를 기대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의 면책 범위가 과도하다면서 기존 법안의 엄격한 집행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산업현장에서의 불법행위 근절"을 강조했다.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TF 3차회의에서 우원식 TF단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TF 3차회의에서 우원식 TF단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손배 범위 제한·개인 배상 청구 불가 등 규정

노란봉투법은 21일 현재 총 4건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민주당 측에선 강병원, 임종성, 이수진(비례대표) 의원이, 정의당 측에선 강은미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들은 공통적으로 △노조활동에 따른 손해배상·가압류 제한 △노조원 등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손해가 아니라면 사측이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폭력이나 파괴 행위가 있더라도 노조가 계획한 것이라면 노동자 개인에게 배상 책임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노란봉투법 발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노동자 범위를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 특수고용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 등 간접고용노동자까지 확대하는 법안을 조만간 발의한다.

파업 노조 손해배상 주요 사례. 그래픽=송정근 기자

파업 노조 손해배상 주요 사례. 그래픽=송정근 기자

노동계 "과도한 손해배상이 노조활동 위축"

노란봉투법 시행은 노동계의 숙원이다.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이나 가압류가 헌법적 권리인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고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족쇄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 KEC는 2010년 파업 노조원 11명을 대상으로 301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2016년 이들의 임금을 3년에 걸쳐 30억 원을 압류하는 결정을 내렸다. 코레일(2006년)과 한진중공업(2011년) 파업 이후에도 사측은 법원으로부터 노조를 대상으로 각각 약 70억 원과 약 59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얻어냈다. 노조뿐 아니라 노동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노란봉투법의 근거가 되는 영국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노조 규모에 따라 배상액 상한(최대 25만 파운드·약 4억 원)을 정하고 있다. 프랑스와 일본, 독일 등 주요국에선 파업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제한하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에서도 파업 주도자나 간부에 대해 강도 높은 책임을 묻고 있다.

기업 측, 재산권 침해 우려도... 여야 '신중'

야권이 추진하고 있는 노란봉투법이 이번에 국회 문턱을 넘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사측을 중심으로 면책 범위가 넓어 기업의 재산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민법과 충돌된다는 지적, 파업에 단순 참여한 노조원이라도 사측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까지 면책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기물 파손이나 폭행까지 파업 범위에 넣어서 면책해달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현행법을 최대한 활용해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지, 포장지만 바꿔 불법도 용인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야당의 행태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야권도 노란봉투법 처리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의석 수를 앞세워 강행 처리할 뜻은 보이지 않고 있다. 워낙 노사 간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환노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여야 협의를 통해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합의해 처리하는 것이 맞다"며 "그래야만 노사 양측이 노란봉투법을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박재연 기자
김가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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