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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은 쭈글쭈글해도 맛은 일품" 당진 먹여 살린 '꽈리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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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 호우가 꼬리를 내린 지난 18일. 선선하게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서해대교를 지나자 충남 당진시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벼이삭이 나오기 시작한 푸른 들녘 사이로 면천면의 한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성인 여성 허리춤 높이로 빼곡히 자란 꽈리고추 나무들이 풋풋한 향을 뿜고 있었다. 2014년 고향인 당진으로 귀농해 이제는 베테랑 농부가 된 호선기(48)씨가 어머니와 함께 잘 자란 고추만을 골라 상자에 담고 있었다.
호씨가 수확 중인 고추는 1960년대 일본에서 전해진 변이종 꽈리고추다. 표면이 꽈리처럼 쭈글쭈글하고 길이도 일반 풋고추 절반에 불과해 '못난이'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육질이 연하고 매운 맛이 덜해, 이제는 볶음이나 조림용으로 빠지면 서운할 정도로 '국민 밑반찬'이 됐다. 장아찌나 튀김은 면천 주민들이 특히 즐기는 요리다. 비타민A와 비타민C, 무기질이 풍부해 몸에 좋은 건 물론이다. 호씨는 "윤기가 흐르고 기다랗게 쭉 뻗은 게 상품(上品)"이라면서 "조금이라도 수확시기를 놓치면 색깔이 빨갛게 물들면서 매운 맛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꽈리고추는 20도 안팎의 온도에서 자라지만 쌀쌀한 초겨울에 파종하고 4월 첫 수확을 하기 위해 주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시설 재배' 방식으로 길러낸다. 생산지 역시 기후가 온화한 충남과 전남, 경남 일대에 분포돼 있다. 그중에서도 '꽈리고추 원조'로 불리는 충남 당진시 재배 규모가 압도적이다. 지난해 기준 당진시의 연간 꽈리고추 생산량은 859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당진 내에선 면천면이 465톤으로 압도적이다. 김석광 당진농업기술센터 채소화훼팀장은 "당진은 토양이 비옥한 데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서해안 해풍이 불어 작물 통풍에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진이 꽈리고추로 유명해진 데는 1968년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에 살던 이순풍씨 역할이 컸다. 당시만 해도 당진시는 오이 재배가 성했다. 하지만 단일 작물만 연속해서 재배하자, 1960년대에 들어 생육이 더디고 품질이 떨어져 더 이상 재배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씨가 꽈리고추 재배 기술을 습득해 마을에 전파한 덕에 새로운 소득원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사기소리 마을회관에는 주민들이 이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가 남아 있다.
이후 농가의 노력도 이어졌다. 2015년 당진농업기술센터에 설립된 '꽈리고추연구회'가 대표적이다. 회원 30명으로 이뤄진 이 단체는 농가의 자생력과 꽈리고추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회원들 스스로 생산∙유통∙판매 등에 관한 연찬회를 열고 우수 사례를 발굴하도록 돕고 있다. 지난해에는 친환경 병해충 방제와 토양관리 등을 중점과제로 설정하고 면천면 밖 농가들의 회원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꽈리고추는 50년 넘게 당진의 '효자' 노릇을 해왔지만, 최근 농가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이 문제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농부로 꼽히는 호씨의 밭에서도 인근 지역에서 모인 70대 주민 6,7명이 수확을 맡았다. 일꾼들이 고령화되다 보니 이전에는 1인당 하루 12, 13박스(4㎏ 기준)에 달했던 수확량도 이제는 7, 8박스 수준으로 줄었다. 포장 역시 소포장은 엄두도 못 내고 전량 4㎏ 단위로 농협물류센터 등에 납품하고 있다.
호씨는 "아이러니하게도 올해는 가뭄과 폭염 등 이상기후 때문에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박스당 2만3,000원대는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농촌 임금은 계속 오르는데 사람은 구하기 어려워지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당진시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2016년 당진농업기술센터가 보급한 '수정벌 재배' 기술은 농가 생산량을 30%가량 증가시켰다. 온도에 민감한 시설재배 작물 특성상 너무 춥거나 더운 날씨에는 문을 열지 못해 자연수정이 쉽지 않다. 이 시기에 인위적으로 벌을 비닐하우스 안에 방사해 수정을 돕는 것이다. 환기가 용이하도록 비닐하우스에 천장개폐 기능을 추가하고, 내부에 환풍기를 단 것 역시 센터의 아이디어였다. 최근엔 에어캡을 활용한 단열재 도입도 구상 중이다. 김 팀장은 "고품질의 꽈리고추 생산과 농가의 수익 향상을 돕기 위해 시범 사업을 적극 발굴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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