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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터넷의 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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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심심한 중국 주부가 수년 동안 중국 위키피디아에 자기가 창작한 중세 러시아 역사를 써왔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2019년부터 206개의 문서를 썼는데, 각 문서의 내적 완결성이 대단해 오랫동안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문서는 너무 잘 써서 특집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까지 됐다고 한다. 그녀는 영어와 러시아어를 할 줄도 모른다고 했다.
굉장히 흥미로운 뉴스였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위키피디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열린 백과사전이라지만, 모두가 자유롭게 편집 가능한 만큼 그 규정은 빡빡하다. 출처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편집 내용은 순식간에 삭제되기 마련이다.
좀 더 파고들어 보니, 그녀가 대단히 보르헤스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문서마다 인용 출처를 자세하게 달아 뒀는데, 그 출처라는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문헌이거나, 실제 문헌 자체는 존재하지만 인용 문구는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고고학팀에서 개인적으로 자료를 얻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기극은 한 소설가에 의해서 들통났고, 그녀는 위키피디아 생태계에서 추방됐다.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나관중과 보르헤스의 영혼을 믹스해서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고 그 재능이 정말로 부럽지만(바라건대, 그녀가 소설가로 데뷔하기를!), 그건 지금 이야기할 내용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터넷의 정보가 얼마나 오염되기 쉽느냐다.
우리나라에서는 위키피디아 생태계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위키피디아 대신, 우리들은 나무위키를 사용한다. 난 약 10년 전에 나무위키의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를 가끔 읽곤 했다. 그때까지 이 위키는 그냥 나 같은 오타쿠들을 위한 게임 등의 정보가 많은 위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위키가 쑥쑥 성장하더니 이제는 한국에서 정보가 가장 많이 모인 위키가 됐다. 구글에서 어떤 키워드를 검색할 때마다 나무위키 페이지가 제일 위에 뜨기도 하고.
아마 나무위키가 이렇게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규정이 위키피디아에 비해 훨씬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은 반드시 출처를 달 필요 없이 문서를 편집할 수 있고, 사견도 어느 정도 써넣을 수 있다. 어쨌든 정보가 활발히 퍼질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그 장점은 그대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들은 격투기 빌런의 존재가 있겠다.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걸그룹 멤버 문서들마다 어릴 때 합기도 몇 단이었다든지 태권도 선수를 준비했다든지를 쓰고 다녀 낚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솔직히 웃기지만, 이건 가벼운 농담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게 격투기가 아니라 다른 음해성 가짜 정보였다면?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에서 정보의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물론 나무위키에도 나름대로 자정 작용이 존재한다. 악질적인 문서 훼손자들은 차단당하고, 가짜 정보를 수시로 편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수십만 장의 문서가 존재하는 위키에서 그런 선의의 손길이 구석구석 가 닿기를 바라는 것도 역시 무리다. 좋든 싫든, 나무위키는 한국 인터넷의 가장 주요한 정보원이 됐다. 이 정보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할 과제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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