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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느릴 때, 시민이 택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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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여성가족부, 사업재검토 발표했지만
정치와 일상의 괴리 메울 토론 필요
정치권, 정상화 목소리 의미 새겨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최근 페이스북에서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문화를 확산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버터나이프크루를 비판했다. 여성가족부는 지적이 있고 나서 즉시 사업 전면 재검토를 발표했다. 당장 여러 곳에서 비판이 나왔다. 정부 부처 사업이 국회의원 말로 뒤집힐 수 있다는 것, 성평등이 설 자리가 축소되는 시대에 공감대를 넓히고 설득할 원칙과 의지가 내부에 없다는 데서 나도 낙담했다.
사업 수행사인 빠띠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금까지 62개 팀이 버터나이프크루로 활동했다. 예산낭비를 우려하는 권 원내대표 지적과 달리 이들의 활동 내용은 폭넓다. 2019년 첫 시즌 참가 팀들은 15개의 청년 정책을 함께 발굴하고 제안했다. 여기에는 마음 건강 관련 통합 정보를 구축해 지역별 전문 기관 정보를 공개하자는 내용도 있다. 늘어나는 자살률이 방증하는 것처럼 청년 세대의 정신 건강은 위태롭다. 정부는 물론 지자체 차원에서 심리 상담을 지원하는 정책도 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청년 심리 상태 진단과 치료에 예산 50억 원을 배정하기로 했고 일대일 상담 지원 인원도 2,000명에서 7,000명까지 늘렸다.
여성가족부는 사업 전면 재검토 결정 배경으로 참가자 가운데 남성이 적어서 젠더 갈등을 증폭한다고 했다. 실제로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것은 맞다. 그러나 젠더 갈등을 완화하는 프로젝트도 많았다. '육아빠 반상회'는 미혼부를 포함해 첫 육아에 뛰어든 초보 아빠를 온라인으로 연결하고, 육아에 도움이 되는 교육형 콘텐츠를 만드는 활동이었다.
버터나이프크루는 정치인에게 정책화되지 않은 다양한 사회적 공백을 시민이 발굴하는 아이디어 풀(Pool)이자, 그 대상의 이야기를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리서치 자료로 작동할 수도 있다. 정치인이라면 사업의 세세한 면을 따지지 않고 세금 낭비를 지적하는 것에 앞서, 이렇게 발굴된 다양한 이야기에서 시민들의 정책 수요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먼저 필요하다. 또 그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정책화할지, 그 연결고리를 튼튼히 하는 방법으로 대안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책은 강력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충분히 있어야 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파악하고 조율하는 과정도 따른다. 반면 시민의 삶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일상과 정치 사이에서 괴리가 생기고 불만이 쌓인다. 그런 관점에서 시민이 다른 시민에게 생생한 공감을 전하고 지금 당장 각자의 삶에 가져다 심을 수 있는 일상 기술을 전수하는 건 의미 있는 성과다. 정치가 시민에게 잘 벼려진 무기라면, 이 사업은 지금 바로 들어올려 사용할 수 있는 나이프인 것이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잘 병행하고 싶은 젊은 세대 부모의 이야기에서 누군가는 위로를 받거나 부부 사이의 역할 분배에 대한 팁을 들었을 것이다. 여성 리더의 비율이 낮은 직군에서 동료를 만났을 수도 있다. 비수도권 지역의 사례를 접하며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무엇을 더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어도 찾아냈을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배제되고, 사업이 폐지 위기에 놓인 게 안타깝다.
"이런 일을 벌일 거면 자기 돈으로 시간 내서 하면 된다"고 권 원내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버터나이프크루 참가 팀은 인건비를 받을 수 없다. 결과물을 영리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 프로젝트 사업비는 100만 원부터 600만 원까지 책정된다. 처음부터 제안자 스스로의 시간과 노력, 기술을 투자해 사회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다.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를 지지하는 서명에 1만 명이 넘게 동참했다. 역대 참가 인원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다. 정치권은 이 목소리의 의미를 잘 들어야 한다. 단순히 사업 존폐 여부가 아닌, 아직 발굴되지 않은 삶의 문제에 대한 시민의 목소리와 다양한 상상력을 정치가 지지해주고 기댈 구석이 되기를 바란다는 요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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