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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와 극동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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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말을 만드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고삐이다. 말을 만드는 원리 중에 ‘나 먼저 원리(me-first principle)’가 있다. 만약 오늘 밤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한다면, 한국에서는 ‘한일축구’가 열리고 일본에서는 ‘일한축구’가 열린다. 세상의 중심인 나라라는 ‘중국’, 태양이 시작되는 나라라는 ‘일본’ 등 나라 이름은 대부분 자국의 영광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말에는 누군가의 생각이 담기기 마련이다.
말을 만드는 데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의미보다 관점이다. ‘극동’이 그 예이다. 동아시아를 극동(the Far East)이라 하는데, 과연 극동이란 위치를 뜻하는 말일까? ‘극동’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유럽의 관점에서 이르는 말이다. 큰 바다를 건너며 다른 대륙을 경쟁적으로 알아가던 때, 유럽에서는 세계지도가 필요했다. 이때 유럽을 중심에 놓고 태평양을 반으로 갈라 만든 지도에서 동아시아는 말 그대로 극동에 놓인다. 사실 지구는 둥글다. 둥근 지구를 펼쳐서 평면 지도를 만들 때, 태평양에서 자르든, 대서양에서 자르든 무엇이 문제인가? 다만 중심에 있고자 한 유럽의 관점이 마땅히 반영되면서 어떤 나라는 가만히 있다가 변방국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의 동쪽을 이르는 ‘동아시아’와, 지구의 가장 오른쪽 끝이라는 ‘극동’은 결코 같은 말일 수가 없다.
나아가 관점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한 사회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 동요의 한 구절을 톺아보자.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사람 조심하세요. 어물어물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이 동요는 자전거를 보고 조심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한 겹 더 들어가 보면, 이 노래는 많은 사람이 함께 걷는 길을 자전거 중심에서 보고 말한 것이다. 자전거 소리가 나면 사람이 비켜야 하고, 만약 다쳤다면 보행자가 어물어물한 탓이라는 것이다. 운전자 중심의 노래를 보행자인 아이들이 부르는 것은 모순적인데도, 여전히 동요로 인기 있는 것은 더욱 모순이다.
실제로 한국의 길은 유독 자동차 중심적이다. 도로는 넓지만 인도는 좁고, 큰길에서는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탈것 중심의 노래가 이런 한국의 길 문화를 일찌감치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쉽게 흘린 말들에서 기준점을 다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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