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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50년 만의 귀환: 배달소년에서 필진으로

입력
2022.08.22 00:00
수정
2022.08.22 01:27
26면


1971년 엄동설한 2개월, 한국일보 배달
350부 배달·판촉하며 세상 다양함 절감
새벽기상 자세로 동북아 정세 점검할 터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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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겨울은 추었다. 크리스마스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 초·중, 대학동창이었던 K와 안암동 로터리에 있던 한국일보 동대문 신문보급소를 찾아갔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신문 배달을 해보기로 했다. 두 달 동안 무엇인가 색다른 일을 해보자는 우발적 충동으로 시작한 배달 일은 혹한기 훈련처럼 고달팠으나 세상을 바닥에서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깜깜한 새벽 3시 자명종 소리에 기상하여 4시에 도착한 보급소는 신문을 분배하느라 전쟁터였다. 30여 명의 10대 소년들이 담당 구역별로 잉크 냄새 물씬 나는 신문을 할당받았다. 필자는 고려대를 포함한 제기동, 한의사가 된 K는 안암동 일대였다. 한국일보 300부와 자매지인 일간스포츠, Korea Times 등 50부를 할당받는 4시 반부터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첫 일주일은 배달을 그만두는 고학생으로부터 인계인수를 받느라 애를 먹었다. 선임자는 300여 배달 주택의 특징을 기억하라고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늦어도 6시 전에는 배달이 완료되어야 했다. 13세 소년에게 신문 350부는 가볍지 않은 무게였다. 왼팔 어깨 끈으로 신문을 고정하고 뛰어야만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일주일간의 인계인수가 끝내고 새해 1월 초부터는 홀로 배달이 시작되었다. 아파트가 없던 시절이라 일일이 단독주택 대문 틈으로 신문을 집어넣었다. 영하 15도 정도의 추위였지만 뛰다 보면 땀이 났다. 마지막으로 길 건너 고려대 정문 수위실에 50부를 통째로 배달하면 멀리 동이 트기 시작했다.

배달이 끝났는데도 팔에 신문이 남아 있는 날도 많았다. 정신없이 달리다 배달을 빼먹은 것이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골목길을 들어가야 했다. 보급소에 도착하면 신문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왔다고 소장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보름 정도 배달을 하다 보니 한 시간 안에 배달을 완료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7시경 보급소에 돌아와 근무일지를 작성한 다음 귀가하여 아침을 먹고는 한숨 자야 했다.

새벽 배달일이 완료되었다고 업무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후 2시부터 저녁 해질 무렵까지 수금과 부수 확대를 위한 판촉 활동을 했다. 아무 집이나 벨을 눌러 신문 구독을 권했다. 지로용지나 온라인 송금이 아니라 영수증 책자를 들고 가가호호 방문했다. 수금과 판촉은 배달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한 달치는 보통이고 두세 달치가 미수인 집도 적지 않았다. 1972년 국민소득이 255달러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던 시절이라 신문대금도 가계에 부담이었다. 수금과 판촉을 통해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2월 중순 진학을 위해 월말까지만 일을 하겠다고 통보하자 소장은 후임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2월 마지막 날 소장으로부터 처음 받은 누런색 월급봉투에는 한 달치의 급여만이 들어 있었다. 필자와 K는 두 달 하고 일주인 동안 일을 했다고 항의했으나 소장은 인계인수 기간 보름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며 그동안 미수금이 쌓여 불가피하다고 둘러댔다. 어린 마음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으나 지금처럼 임금 체불을 항의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50년 만에 배달 소년에서 필진으로 귀환하며 누런 월급봉투의 추억이 떠올랐다. 베이징, 대만해협과 평양, 도쿄 등 동북아 정세는 복잡 미묘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평화공존을 선언했으나 50년이 지난 오늘날 핵무기가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다. 닉슨 방중 50주년인 올해 대만해협의 파고는 심상치 않다. 칼바람이 불던 엄동설한에 벌떡 기상하던 자세로 독자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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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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