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17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근본적인 행동과 접근법을 바꾸지 않는 한 대북 제재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 이어 이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재차 밝힌 '담대한 구상'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협상에 나서는 단계부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와 결부된 경제 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터라, 미국이 한국과의 이견을 드러낸 형국이다.
2018년 싱가포르, 이듬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되듯, 경제 제재 완화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서 체제 보장과 더불어 급선무로 여기는 사항이다. 그런 만큼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에 유효한 카드이고, 윤석열 정부의 남북관계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의 실효성을 높여줄 요소로 평가된다.
문제는 대북 제재 완화가 수많은 당사국이 걸린 외교적 난제라는 점이다. 유엔의 경우 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으로 이뤄진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제재 면제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8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비핵화 협상을 재가동하고 담대한 구상 이행을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지만, 핵심 파트너인 미국부터가 한국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입안에 앞서 실행 환경을 충분히 검토하고 이견을 조율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담대한 구상의 출발조차 어렵다.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참여하는 단계에서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한반도 자원식량교환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는 유인책을 내놨는데, 이것부터가 북한 광물의 외부 반출을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담대한 구상의 3대 분야인 경제, 군사, 정치 가운데 우리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는 사실상 경제뿐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정부는 구상 성사 여부를 좌우할 조건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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