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원귀(寃鬼)의 저주도 싹뚝 잘라낼 '유전자 가위'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조선 세조 때 남이(南怡·1441~1468)라는 장군이 있었다. 왕실이 외가인 데다가 무공도 뛰어나 최연소 병조판서가 됐으나 역모죄로 처형된 이후 훗날 여러 설화의 주인공이 된 인물이다.
그중에서도 남이 장군이 썼던 '북정가(北征歌)'라는 시 내용이 장군의 최후와 관련된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시의 끝부분은 이렇다.
"사나이 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안하게 하지 못하면(男兒二十未平國), 훗날 누가 대장부라 부르겠는가(後世誰稱大丈夫)"
애초에는 한자로 쓰인 시이고 평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平(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웬일인지 이 글자가 '得 (득)'이라는 글자로 바뀌면서 문제가 됐다. '나라를 가지겠다'는 뜻으로 변하게 되면서, 결국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증거로 변해버렸다는 게 설화의 내용이다. 역사적으로는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예종이 남이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한명회, 유자광 등 당시 훈구세력이 남이 장군 같은 젊은 신진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미평국'의 '평' 자를 '득' 자로 바꿔, '미득국'으로 조작함으로써 반란의 증거로 삼았다는 게 정설인 듯하다.
그러나 설화에서는 우리나라 전설에 자주 나오는 소위 원귀가 사태의 주범으로 등장한다. 글자를 바꾼 건 사람이 아니라 남이 장군에게 원한을 품었던 원귀의 소행이라는 이야기로 변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오늘날 유전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내용일 수 있는데, 바로 염기서열 변이라는 현상 때문이다.
생명과 관련된 개체는 모두 자신의 생명 정보를 가지고 있다가, 후손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이 생명 정보라는 것은 DNA 또는 RNA라고 부르는 핵산 물질 속에 저장되어 있다. 학자들은 또 그 생명 정보를 A, C, G, T 하는 식으로 영어 알파벳 4글자의 조합으로 표시하면서 연구하고 있다.
생명 정보가 ACCA라고 쓰여 있을 때와 ATTA라고 쓰여 있을 때 생물학적 의미가 달라지게 되고, 실제로 많은 질병들이 이처럼 생명정보 글자들이 바뀌는 현상, 즉 유전자의 염기서열 변이와 깊은 관계가 있다. '평'자가 '득'자로 바뀌면서 설화 속 남이 장군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처럼 우리의 생명정보 역시 한 글자만 변하더라도 개인의 삶과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유전질환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암처럼 살아가다 어떤 순간 한 글자가 변하면서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의 생명정보 자체에는 위험한 변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처럼 그동안 큰 문제가 없던 다른 생명체의 생명정보가 변하면서 우리 건강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생명 정보를 건강하게 지킬 방법은 뭘까. 사실 우리는 코로나 시국을 통해 그 방법의 큰 원칙 두 가지를 이미 배우고 실천하고 있다. 하나는 마스크 착용이나 거리 두기처럼 나쁜 변이의 원인을 최대한 접촉하지 않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백신이나 치료제처럼 우리 내부에 좋은 유전정보를 새로 기록하는 방법이다.
코로나 종식 방법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처럼, 유전자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방법도 현재는 초기 단계다. 그러나 바이오 기술의 발전은 조만간 코로나19 같은 감염병뿐 아니라 암이나 치매 그리고 다양한 유전질환의 원인이 되는 나쁜 염기서열 변이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유전자 가위' 같은 유전자 치료연구에 보다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육성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