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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가 '더' 약할 때를 노린다...아기 엄마를 공격하는 이유

입력
2022.08.20 04:30
12면

<83>혐오와 차별은 약자가 가장 취약할 때를 틈탄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 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프랑스 화가 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캡처

프랑스 화가 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캡처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확립한 왕이다. 1643년 다섯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1715년 77세로 사망했는데, 72년 3개월이나 되는 긴 재위기간만큼이나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중에는 배변을 하면서 정무를 보았다는 것도 있다. 우리가 화장실에서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듯, 왕이 화장실에 혼자 앉아서 국정에 관련한 서류를 읽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루이 14세는 열린 공간에서 요강 위에 앉아 프랑스의 신하는 물론 주프랑스 대사까지 만났다고 한다. 그는 왜 그랬을까?

일단 건강 문제가 있었다. 궁정 수석의사가 1647년부터 1712년까지 루이 14세를 매일 진찰하고 기록을 남긴 '건강일지(Le Journal de santé)'를 보면, 왕은 천연두, 당뇨, 말라리아, 말라리아 후유증으로 인한 탈모증, 임질, 피부염, 류머티즘, 통풍, 치통, 소화불량, 장염, 치루 등 많은 병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충치로 고생하던 루이 14세는 윗니를 한 개만 남겨두고 다 뽑았다. 이때의 잘못된 발치방법과 치료 때문에 입천장에 구멍이 나 버렸다. 입과 코가 연결되어 와인을 마시면 코로 나오기 일쑤였다.

그래도 대식가였던 루이 14세는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기름진 고칼로리 음식을 즐겼지만 이가 없어 잘 씹어 먹을 수 없으니 만성 소화불량과 장염을 달고 살게 되었다. 이에 당시 수석 의사였던 다캥(Antoine d’Aquin)은 장을 비워야 한다며 설사약을 복용시키고 관장을 했다. 앞서 건강일지의 기록에 의하면 왕은 하루에 18번이나 변기로 달려가기도 할 정도로 설사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태양왕 루이 14세는 사람들 앞에서 요강에 앉아 나랏일과 볼일을 동시에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부끄러움도 취약함도 거리낄 게 없는 '변기의자'의 권력

피치 못할 건강상 이유가 있었다 해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요강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이다니? 창피하지도 않았을까? 이 부분은 좀더 세세히 보자. 역사책에는 대개 요강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당시 루이 14세는 일종의 이동식 변기인 '뚫린 의자(chaise percée)'위에 앉아 있었다. 17세기에 일반화된 변기 의자는 엉덩이 부분에 구멍이 뚫린 의자였다. 구멍 아래에는 요강이 있었다. 변기 의자는 캐비닛 형태로 만들기도 했다. 이용자는 상자의 뚜껑을 열고 앉아서 볼일을 보았다. 오늘날의 양변기와 비슷한데, 상자 안에 요강이 들어 있는 것만 다르다.

베르사유 궁전 내 여왕이 사용하던 공간에 위치한 변기 의자. 위키피디아 캡처

베르사유 궁전 내 여왕이 사용하던 공간에 위치한 변기 의자. 위키피디아 캡처

변기 의자 역시 가구였기에 상류계급 사람들이 사용하는 변기 의자는 금과 은을 사용하여 문양을 새겨 화려하게 꾸몄다. 외부인의 눈에 안 띄도록 금고나 책더미 모양으로 만들어 위장하기도 했다. 변기 의자의 앉는 부분에는 벨벳 등 고급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쿠션을 올렸다. 그리하여 변기 의자의 뚜껑을 닫으면 일반적인 의자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아마 변기 의자에 앉아 있어도 일반 의자에 앉은 모습과 자세는 거의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니 루이 14세가 요강에 앉아 손님을 맞이했다고 해도,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 즉 항아리 요강에 쭈구려 앉은 모습은 아니었다. 보는 사람들이 괴롭지, 앉아 있는 자신은 그리 괴로울 이유가 없다.

루이 14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사상가 몽테뉴는 비판했다. '루이 14세가 변기 의자를 마치 왕좌나 되는 것처럼 여기고 그 위에 앉아 일한다'고. 핵심을 짚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루이 14세에게 변기 의자란 최고의 왕좌다. 변기 의자에 앉아 국정을 본다는 것은, 아니 배변하는 상태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루이 14세가 최고 권력자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독일의 인류학자 한스 피터 듀에어(Hans Peter Duerr)는, 공공장소에서 '뚫린 의자(chaise percée)'를 사용하는 것은 권력의 표시라고 평했다.

예로부터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배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비록 요강 속에 모인 오물은 아무 데나 던지더라도, 배변 활동 자체는 외딴곳으로 가서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인간다운 예의범절이어서가 아니다. 인간 역시 동물이고, 배변 중인 동물은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화가 오토 반 모에르드레히트가 그린 모압왕 에글론을 에훗이 살해하는 장면. 왕 옆에 구멍 뚫린 변기 의자가 보인다. 네덜란드 왕립 도서관 소장품.

네덜란드 화가 오토 반 모에르드레히트가 그린 모압왕 에글론을 에훗이 살해하는 장면. 왕 옆에 구멍 뚫린 변기 의자가 보인다. 네덜란드 왕립 도서관 소장품.

역사서를 찾아보면 배변 중에 살해당한 권력자들이 많이 있다. 로렌 공작 고트프리트 4세는 볼일을 보던 중 반란군의 습격을 받아 1076년에 사망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압왕 에글론은 기원전 12세기께 사람인데 이스라엘의 에훗에게 살해당했다. '사사기' 3장 20절에는 에훗이 호위병을 물리치고 혼자 있는 에글론에게 속임수를 써서 접근해 칼로 배를 찔러 죽이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는데,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고 되어 있다. 왕이 통풍이 잘 되는 화장실에 혼자 있다가 암살당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루이 14세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변기 의자에 앉아 배변하곤 했다는 것은, 비무장 상태이고 동물로서 가장 취약한 상황인데도 아무도 그에게 대적할 수 없을 만큼 그가 강력한 권력자의 위치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통치 행위다. 창피해하기보다 당연시 여기거나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폭력·차별·혐오는 대상이 취약할 때를 노린다

여기까지 재미있게 따라오셨는지 모르겠다. 이 코너는 '젠더살롱'이고, 나는 역사나 이야기의 내력을 추적해서 성차별 현실을 고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루이 14세 에피소드로 이 글이 그냥 끝날 리가. 루이 14세 시절은 프랑스 근대지만, 변기 의자 에피소드에서 보이는 절대 권력자와 추종자들의 의식 상태는 고대도 아니고 더 옛날, 원초적인 동물로서의 생존 감각에 있다. 바로, 배변 중인 동물은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 이를 적용해 보자.

공중 화장실에서 배변 중인 여성들을 불법 촬영하는 남성들의 망탈리테(mentalités,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배변 과정에 성기가 보이는 것이 뭐 그리 성적으로 흥분할 일인가.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동료 시민으로 보지 않기에 여성이 가장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을 해결하는 데에 몰두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너의 짐승적 면모를 나는 안다며 그 광경을 약점 잡아 기록하려는 것이다. 배변 중인 동물은 공격에 취약하기에.

지난 16일 제주행 항공기에서 아기가 운다는 이유로 폭언을 퍼부은 40대 남성에 대한 한국일보 기사

지난 16일 제주행 항공기에서 아기가 운다는 이유로 폭언을 퍼부은 40대 남성에 대한 한국일보 기사

다른 경우도 있다. 지난 16일, 제주행 항공기 안에서 돌 지난 아기가 운다는 이유로 폭언을 퍼부은 40대 남성이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그는 승무원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애XX가 교육 안 되면 다니지 마"라고 욕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를 욕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말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민폐 끼치는 부모'지, 사실 엄마/여성에 대한 공격이다. ‘맘충’이라는 혐오 단어처럼. 아빠/남성이 혼자 아이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부모'는 욕먹지 않는다. 주위에 있는 많은 여성들이 나서서 도와준다. 심봉사가 아내가 사망한 후 마을 아낙네들에게 젖동냥을 하여 심청이를 키울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는가. '노 키즈 존' 역시 사실은 아이 자체가 아니라 엄마/여성에 대한 배제와 차별과 공격이다. 아이는 혼자 식당이나 카페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동반하여 외출하는 부모는 엄마인 경우가 더 많으니, 결국 여성에 대한 공격이다. 왜 여성에 대한 공격을 대신 아이에 대한 공격으로 하는 것일까?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 짐승은 새끼를 보호해야 하기에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앞서 루이 14세의 경우처럼, 인간도 동물이고, 동물의 행동이란 기본적으로는 생존 감각에 좌우된다.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자들은 누가 더 약한 상태인지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보고 공격하기 마련이다. 배변 중인 동물과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동물은 공격에 취약한 것, 이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수많은 여성 혐오 현실이 눈에 더 들어온다.

그러나 세상은 약자가 차별받는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이번 제주행 비행기 '난동남' 사건도 그렇다. 그는 아이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화가 난 것이 아니다. 평소 차곡차곡 다른 일을 겪으며 적립해둔 자신의 공격성을 약자인 아기를 데리고 있는 여성에게 분출한 것뿐이다.

덧. 베르사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루이 14세 때 설계한 베르사유 궁전의 평면도에는 화장실과 욕실이 나와 있다. 프랑스혁명 후 베르사유 궁전을 개방하고 박물관으로 용도를 변경하면서 공간 개조 작업이 이뤄졌는데, 그때 화장실 등 생활 공간을 대부분 없앴다. 흔히들 상식으로 알고 있는 ‘화장실이 없어서 인분 투성이인 베르사유의 정원’은 후세 사람들이 앙시앵레짐을 공격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역사와 이야기를 누가 어느 관점을 갖고 어떻게 서술하느냐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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