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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과거를 바꾸기를, 우리 시대 실비아가 잘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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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과거는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가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푸른 눈의 여인이 어린 실비아에게 묻는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랬으면 좋겠어요." 실비아가 답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 논리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래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과거는 이미 정해진 시간이니까. 그럼에도 푸른 눈의 여인은 왜 이런 질문을 했던 걸까.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미국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삶을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 창작한 팩션 뮤지컬이다. 실비아 플라스는 여덟 살에 시를 발표해 상을 받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소녀였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플라스는 아홉 살에 처음 자살 시도를 하고 21세에 또 한 번, 31세에 세 번째 시도 끝에 생을 마감한다. 서른하나, 길지 않은 생에 세 번의 자살 시도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가십거리다. 그러나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자극적 죽음이 아닌 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1950년대 실비아는 본격적으로 시를 쓰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천재 시인인 테드 휴즈와 결혼하고 출산을 한다. 사회적 성공과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이룬 실비아를 힘들게 했던 것은 단 하나, 그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그의 시에서 공포를 읽은 평론가가 작품에 담긴 공포의 근원에 대해 묻자, 실비아는 "태어나 봤더니 여성이었다"고 답한다. "게다가 남편은 천재 시인, 자신은 아이큐가 160인 작가"였다고 덧붙인다. 남편 테드는 작품을 위해 더 성실하게 고민하라고 충고하지만 실비아는 생계를 위한 강의와 육아, 그리고 온갖 집안일에 남편의 원고 타이핑까지 도맡아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부당한 대우를 1950~1960년대 사람들은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식 교육에 매진한 실비아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모두 같은 삶을 살아왔다. 실비아와 그의 다른 분신 빅토리아, 그리고 실비아의 어머니. 세 여성이 부르는 넘버 '엄마를 배신할 수 없어'는 당시 여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희생과 그로 인한 부채감에 대해 노래한다. 실비아는 작가로서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미래의 실비아는 과거의 실비아에게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 온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일이 비단 1950~1960년대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 작품이 주는 공감대는 크다.
작가이자 아내이고 엄마였던 실비아가 가부장적 사회와 맞서야 했던 이야기는 이미 흔해져 버린 익숙한 여성서사다. 뮤지컬 '실비아, 살다'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연극적 혹은 뮤지컬적인 장르 특성을 잘 살려낸 연출과 음악, 안무다. 실비아가 시를 낭송하는 장면에서 황당하고 무지한 초대 손님들의 예의바른 품평에 대한 실비아의 감정을 빅토리아가 대신 노래하는 '쿵쿵 예고편'이나, 실비아의 상황을 연극적 비유로 설명하는 '술 탄 물'은 음악과 극의 뮤지컬적 어울림이 매우 세련되게 이뤄진 곡이다. 보편적이고 익숙한 이야기를 연극성 짙은 뮤지컬 형식으로 표현해내 '실비아, 살다'만의 매력을 발산한다.
작품의 처음과 끝은 기차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생을 비유한 기차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이 장면에서 실비아의 과거와 미래가 만난다. 프롤로그의 경직된 기차 장면은 에필로그에서 한결 편안한 장면으로 바뀐다. 실비아가 겪어낸 삶의 노력에 영향을 받아 다시 1950~1960년대를 살아야 하는 실비아가 죽음이 아닌 다른 결론을 맞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비아의 이야기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네 어머니와 누이, 언니, 동생의 이야기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실비아들이 힘겨운 선택을 하지 말고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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