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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처럼 주택 개조...하루 만에 착한 집이 된다(feat. 탄소배출 70%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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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집은 탄소를 무척 많이 배출합니다. 주택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가스는 도시 탄소 배출량의 약 30%나 차지하죠.
새로 지을 수는 없고, 내가 사는 집이 하루 만에 '탄소중립' 혹은 '탄소감축' 주택으로 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구에 착한 일 좀 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요.
이런 '환상'을 실현하는 곳이 있습니다. 유럽의 비영리 단체 ‘에너지스프롱(energiesprong)’을 소개합니다.
지난달 22일, 영국 중부의 도시 '노팅엄'에 도착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곳입니다. 이곳에선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개조한 주택을 볼 수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은 70%, 에너지 요금은 80%까지 줄였죠. 20㎝에 달하는 두꺼운 벽과 단열재, 이중 처리된 창문, 두꺼운 지붕과 태양광 발전 패널, 전기 난방 시설인 히트펌프(heatpump) 등 종합적인 에너지 효율 개선 설비가 설치된 덕분입니다.
일반적인 종합 주택 개조(deep retrofit)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공사 기간입니다. 최소 3주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단순히 창문 하나 바꾸는 게 아니라, 단열재·지붕·가스보일러 등을 전부 바꾸기 때문입니다.
설비비는 차치하고, 거주민은 공사 기간 동안 집 밖에 나가 살아야 하는데요. 이 불편함과 숙박 비용은 주택 개조 사업의 큰 장벽이 됩니다. 3주간 인건비와 장비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에너지스프롱은 이 기간을 크게 단축시켰습니다. 핵심은 조립식 공사입니다. 공장에서 아예 벽과 지붕을 만든 뒤 현장에 가져와 붙이기만 하는 것이죠. 마치 장난감 ‘레고’를 조립하듯이요. 이는 공사 비용을 최소 35% 저감시켰습니다.
이날 방문한 노팅엄의 주택은 공사가 1주일도 안 걸렸습니다. 공장에서 모듈을 만들고, 현장에서는 3개 층으로 나뉜 주택에 맞게 덧대어 붙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사업 노하우가 쌓일 대로 쌓인 네덜란드에서는 하루 만에 공사가 끝나기도 합니다.
노팅엄 지역엔 이런 종합 개조 주택이 벌써 155채나 등장했습니다. 내년 3월까지 130채가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영국 런던시는 지난해 이 기술을 이용해 내후년까지 1,600채의 주택을 개조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19만 채를 더 개조할 예정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11만1,000건이 계약됐고, 매년 1,000채가 개조되고 있습니다.
에너지스프롱은 2010년 네덜란드 정부의 자금 500만 유로(약 70억 원)를 받아 시작됐습니다. 네덜란드어로 ‘에너지 도약’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에너지스프롱이 발간한 ‘국제 사업 확장 백서’에 따르면, 이 단체의 목적은 사업성 있는 주택 개조 시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12년 전, 네덜란드 정부는 정부·건설사·주택 소유주로부터 독립된 ‘시장 개발 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국가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주택 부문의 탄소중립이 필수적인데, 이를 이끌 정부 부처는 고려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았습니다. 시장 참여자들도 자발적으로 탄소 중립에 투자하지 않았죠.
따라서 네덜란드 정부는 시장을 인위적으로 고안하고 개발할 전담팀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에너지스프롱, 네덜란드어로는 스트룸버스넬링(Stroomversnelling)입니다. 어떻게 공사를 더 싸게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주택 소유주가 기꺼이 이 비용을 내게 할지를 연구했습니다.
공사비가 덜 드는 방안을 개발해 주택 소유주를 시장에 끌어들이고, 이들로부터 벌어들인 돈을 활용해 다시 공사비를 줄이는, 수요·공급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에밀리 브러햄 에너지스프롱 영국 전략·운영부문 대표는 “당시 기술자·은행가·마케터 등 4, 5명이 모여 ‘탄소중립 주택 시장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사업 관행을 바꿀 것인가’를 연구했다”며 “영국에서는 총 10명이 시장 개발을 이끌고 있다”고 했습니다.
동일한 주택 여러 채를 동시에 작업하는 것도 가격을 낮춥니다. 노팅엄에서는 개조 작업을 할 때 10여 가구를 한 번에 계약했는데요. 집 모양이 엇비슷해서 새로운 모듈을 디자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방식이 가능한 배경엔 정부 주도로 사회적 주택을 일괄 공급한 영국의 주택 구조가 한몫했습니다. 주택의 모양새가 서로 엇비슷해서, 유사한 모양의 단열재 블록을 공장에서 양산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스프롱은 이렇게 대규모 공사가 가능한 주택이 영국엔 최소 390만 채, 네덜란드에는 230만 채가 있다고 추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주택 모양이 엇비슷한 한국에도 적용해봄직한 모델로 생각됩니다.
노팅엄에서 주택 한 채당 개조 비용은 10만 파운드(약 1억5,800만 원)에서 6만5,000파운드(약 1억280만 원)으로 35% 줄었습니다. 에너지스프롱은 이를 5만5,000파운드까지 줄이면 정부 보조금 없이도 개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백서에 따르면, 네덜란드에는 이미 가격이 55%나 떨어졌고, 지금은 개조 모듈의 품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에밀리 브러햄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주택의 유형과 거주자의 필요에 따라 모듈 종류를 규격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백화점 카탈로그를 보고 기성품을 고르듯' 주택 개조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비싸죠? 다양한 자금 조달 방법이 있습니다.
전체 비용의 약 23%를 채우는 건 개조 공사를 통해 저감한 에너지 요금입니다.
노팅엄의 경우, 공사 이후 에너지 요금이 80%나 줄었다고 합니다. 기존에 지출하던 요금이 약 100만 원이었다면, 지금은 20만 원 수준으로 준 것이죠.
이때 주택 소유주들은 세입자의 에너지 요금을 약 10~20%만 낮춰 줍니다. 실제 에너지 요금인 20만 원이 아니라, 80~90만 원을 받는 겁니다. 그럼 주택 소유주 손에는 두 요금의 차이인 60만~70만 원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돈이 주택 개조를 위해 받았던 대출을 갚는 데 쓰입니다. 노팅엄의 경우 집 한 채당 약 1만5,000파운드(2,300만 원)를 30년에 걸쳐 상환합니다. 이런 식으로 기존에 낭비되던 에너지 요금을 주택 개조 시장에 넣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은 세입자, 주택 소유주, 정부 세 주체 모두에게 이롭습니다. 세입자는 이전보다 10% 적은 에너지 요금으로 이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세입자가 내는 요금은 ‘고정액’입니다. 외부 에너지 요금의 변동과 관계없이, 매년 일정한 요금을 냅니다. 이 덕에 세입자는 기후위기로 연료비가 오르는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주택 소유주는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죠.
다만 ‘고정액’을 내게 하는 데엔 조건이 있습니다. 세입자의 에너지 사용량에 제한을 두는 것입니다. △난방 온도 섭씨 21도 유지 △전기 사용량 1,500kWh 이하 △하루 온수 사용시간 제한 등이 해당합니다. 이 이상 전기를 사용하면 그만큼은 세입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이런 제한은 정부가 주민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주택 부문의 탄소중립을 이끌려면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에 더해, 사용량 자체를 어느 정도 줄여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주택에 살아도 전기를 펑펑 낭비한다면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에너지 요금을 고정하고 그에 맞춰 사용량도 제한하니 자연스럽게 지나친 낭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제한을 둔다고 하더라도, 위 조건은 평균적인 런던 시민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입니다.
이건 영국만의 좀 특이한 조건인데요. 다만 각국의 사정에 맞게 어떤 방식으로든 자금 조달 노력이 강구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 주도로 주택을 공급하다, 1980년대 보수 정부를 지나며 민간 영역에 판매됐습니다. 이때 팔리지 않았거나, 그 이후 새롭게 지어진 주택이 여전히 사회적 주택으로 남아 있는데, 그 비중이 약 17%(약 390만 가구ㆍ잉글랜드 기준)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주택 소유주는 주택에 보수 공사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30년치 보수 비용을 미리 축적해 둬야 합니다. 집이 오래됐으니 지붕에 물이 새거나, 창문 틈이 벌어지는 등 보수를 할 일이 있겠죠. 곰팡이 제거, 결로, 누수 피해 등도 많습니다.
그런데 언제 주택에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미리 예상 보수 비용을 따로 보유해둬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 주택당 4만 파운드(약 6,300만 원) 정도 됩니다. 기업 회계에서 향후 큰돈이 나갈 것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아두는 것과 유사합니다.
노팅엄 지역의 에너지스프롱 주택 개조 사업비 약 69.2%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 지역 주택 공사비는 6만5,000파운드까지 줄었는데요. 그중 4만 파운드를 사회적 주택의 유지관리비 축적분으로 냈습니다.
30년간 자잘한 보수 공사에 들이려고 모아둔 돈을 한 번 제대로 공사하는 데 쏟아 붓는 것이죠. 대신 개조 후 주택 보수는 건설사가 30년간 책임을 집니다.
모든 국가에 적용가능한 조건은 아닙니다. 에이미 브러햄 대표도 “우리는 아직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하고, 지자체나 정부가 실험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영국 정부의 독립적 기후변화 자문기구 '기후변화위원회(CCC)' 또한 2018년 의회에 보내는 보고서에서 "영국이 에너지스프롱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영국뿐 아니라 프랑스·독일·이탈리아·미국에도 에너지스프롱 개념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고요.
사업비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총 공사비가 6만5,000파운드였고, 주택 소유주의 운영관리기금이 4만 파운드, 에너지 저감으로 인한 금액이 1만5,000파운드였죠. 그럼 약 1만 파운드가 부족합니다.
이 1만 파운드가 에너지스프롱이 앞으로 줄여야 할 과제입니다. 지금은 이 돈을 정부·재단 보조금으로 조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런던에서는 런던시와 유럽지역개발기금(ERDF)이 절반씩 감당합니다.
에너지스프롱은 주택 개조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점차 공사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공급망이 발달하며 비용이 줄어드리라는 기대죠.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2015년에 정부 보조금 없이 700채가 개조됐고, 매년 1,000채를 개조하고 있습니다.
에밀리 브러햄 대표는 “브렉시트(Brexit) 영향으로 영국의 건축 비용이 30%나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총 공사비를 35% 저감한 것은 매우 큰 성과”라며 “런던에서 1,600채를 개조하며 비용이 더 크게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국 정부는 에너지스프롱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정책을 고안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2019년 주택 개조에 10년간 약 92억 파운드(약 14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 해 1조4,000억 원 규모이지요. 참고로 한국의 2019년 주택 개조(그린 리모델링 등) 사업비는 93억 원이었습니다.
영국의 재원 조달 방법 중 눈에 띄어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에너지 회사 의무(Energy Company ObligationㆍECO)’라는 제도입니다.
이는 각 가정에 에너지를 판매하는 에너지 회사가 수익금의 일부를 고객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데 쓰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에너지 효율이 낮은 집에 전기를 팔아 수익을 올렸으니, 주택 효율을 개선하는 데 수익을 환원하라는 취지입니다.
ECO는 4년마다 목표와 기금 규모를 개정하는데, 지난달 발표한 4번째 정책(ECO4)은 약 40억 파운드(약 6조 원) 규모로, 최소 350만 가구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영국 기반 기후변화 싱크탱크인 E3G의 줄리엣 필립스 시니어 정책 고문은 “ECO는 영국의 에너지 효율 재원 중 가장 큰 재원”이라며 “더 많은 가구를 지원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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