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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독립전사가 감당한 전선들

입력
2022.08.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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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남자현

남자현은 드물게 알려진 대한제국 무장 독립투사다. e-gonghun.mpva.go.kr

남자현은 드물게 알려진 대한제국 무장 독립투사다. e-gonghun.mpva.go.kr


대한제국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2.7~ 1933.8.22)은 일제 고문과 옥중 단식투쟁 후유증으로 숨졌다. 3대 독자 아들(김성삼)에게 그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유언과 함께, 중국 돈 248원을 유산이 아닌 독립 축하금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는 경북 안동 유력자 집안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한학을 익혔고 만 19세 되던 1891년 결혼했다. 을미년 의병(장)이던 남편(김영주)과 사별한 뒤 며느리로, 유복자의 어머니로 살다가 1907년 정미의병을 일으킨 친부(남정한)의 의병 모집책으로도 활동했다. 3·1운동 직후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 김동삼의 서로군정서에서 군자금 모금과 독립운동가 옥바라지 등을 하며 교회당 등을 거점으로 여성 계몽 교육사업에 힘썼다.

그는 당시 만주에도 엄연했을 성 역할의 편견을 깨고, 남성 대원들과 더불어 1926년 사이토 마코토 당시 총독 암살 임무를 맡았고, 1932년 만주국 조사차 하얼빈을 방문한 국제연맹 조사단에 독립 의지를 담은 단지(斷指) 혈서를 적어 자른 손가락과 함께 전달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를 통틀어 그가 유일했고,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었다.

조직이 여성인 그에게 1933년 이규동(1889.3.26~1950.7.25)과 함께 만주 일본대사 겸 관동군 사령관 암살 임무를 맡겼던 것도 그를 크게 믿었기 때문일 게다. 만 60세의 그는 걸인으로 변장한 채 암살 현장 주변을 정탐하던 중 밀정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6개월여의 취조와 고문을 견디며 단식 투쟁으로 맞서다, 병들고 망가진 채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별세했다.

2015년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윤옥(전지현 분)이 남자현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과 삶이 잠깐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그가 활약하던 당시 만주의 이름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그는 우러러볼 만한 전사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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