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장판 밑 썩은 물과 씨름... '붉은 압력솥' 하나 지켰다 [수해 자원봉사]

입력
2022.08.19 09:00
서울 신림·논현동 자원봉사 참여했더니
작업 도구 부족해, 물 다 못 빼낸 아쉬움
침수된 목제가구들 골판지처럼 부서져
"하루 이틀로 복구 안 돼... 지속 도움 필요"

지난 1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 수해복구 현장. 기자를 포함해 자원봉사자들이 아무리 물을 빼내도 금세 다시 물이 차올랐다. 접이식 탁자, 빗자루 등을 이용해 장판 아래 고인물을 끝없이 밀어냈다. 최은서 기자

“이거 완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데. 아니, 바다에서 물 퍼내기라고 해야 하나.”

지난 12일 오후 2시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골목의 한 반지하 주택. 4시간째 수해 복구에 몰두하던 자원봉사자들이 물을 퍼내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오전만 해도 호기로웠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무리 현장을 수습해도 차도가 없어서다. 방에 고인 물을 다 퍼내면 거실이 젖어 들었고, 거실을 닦는 새에 방에는 물이 또 차올랐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 기자들은 서울의 수해 피해지역 자원봉사를 지원해, 수해 복구 현장에 뛰어들어 봤다. 신림동의 반지하 집에선 퍼내도 퍼내도 계속 고인물이 흘러나와 자원봉사자들을 좌절케 했고, 논현동의 반지하 집에서는 모든 세간을 버리고 오직 '빨간 압력 밥솥' 하나만을 건졌을 뿐이다.

그곳에 살던 거주자들은 모두 노인이었으며, 이들은 "오늘 밤 어디서 주무시냐"는 말에 선뜻 답을 못했다.

장판 아래 썩은 물, 끝없이 새어 나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 현관 앞에 물이 고여 있다. 이곳은 노인 2명이 사는 집으로, 지난 8일 내린 폭우로 물에 잠겼다. 최은서 기자

10여 평 남짓으로 보이는 신림동의 반지하 집은 노인 여성 두 명이 사는 곳이다. 8일 폭우로 침수된 뒤 다음 날인 9일부터 수해 복구 인력이 계속 투입되고 있었다. 기자가 봉사자 6명과 함께 한 조를 이뤄 찾아간 12일 역시 전날까지 다른 봉사조가 최대한 물을 퍼내고 간 뒤였다.

각종 살림살이가 꽉 들어차 있는 거실, 화장실, 방 등이 모두 구석까지 물이 고여 있었다. 그래도 봉사자들은 양수기로 물을 빼내야 하는 단계는 지났으니 눈에 보이는 바닥의 고인물만 잘 닦아내면 어느 정도 수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판 위 고인물을 깨끗이 닦아 내도, 장판을 발로 밟는 순간 물먹은 스펀지를 누르듯 장판 사방에서 물이 잔뜩 새어 나왔다. 그러면 다시 원상복귀였다. 이 집은 장판 마감이 사실상 안 돼 있는 열악한 상태에서 물에 잠겼다. 대량의 물이 벽 틈과 장판 가장자리를 통해 장판 밑에 갇혀 있었다. 이미 장판 아래에서는 물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판을 다 들어내지 않는 한 복구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장판을 들어내는 건 우리가 당장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표면의 고인물을 닦아 낸 다음 장판을 누르고, 새어 나온 물을 또 닦아 내고를 끝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행주·수건·쓰레받기? 장비가 부족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을 찾아 수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최은서 기자

주민센터에서 받아 온 건 양수기와 행주·수건, 목장갑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안방의 경우, 운동화 밑창까지 찰박찰박할 정도로 물이 고여 있었다. 양수기를 쓰기엔 수면이 너무 얕았고, 행주·수건을 적셔 짜내자니 어림도 없었다.

봉사자들은 집에 있는 도구들을 임시방편으로 사용해야 했다. 접이식 탁자, 삽, 쓰레받기, 빗자루 등을 동원했다. 한 명이 삽과 접이식 탁자로 방 안쪽에서부터 물을 밀어 오면, 또 다른 한 명이 빗자루로 물을 쓸어 문지방을 넘기게 했다. 넘어 온 물은 쓰레받기로 밀어 현관 밖으로 빼냈다.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주민센터에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해 마른 행주를 대량 추가로 받았지만 이마저 큰 소용이 없었다. 마침 간단한 세면도구를 챙기러 집에 들른 어르신께 양해를 구하고 성한 이불 몇 개를 받았다. 장판 틈새를 막았더니 커다란 솜이불이 순식간에 묵직하게 젖어들었다. “이불이라도 많으면 좋을 텐데.” “물 퍼내는 도구 몇 개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봉사자들은 물을 퍼내며 연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물이 계속 새어 나오는 장판 틈을 행주 더미로 막아둔 모습. 최은서 기자

원래 오전 작업까지만 예정하고 왔던 봉사자들은 좀처럼 복구가 안 되는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결국 오후까지 남아 몇 시간 더 물을 퍼냈다. 햇볕에 말린 행주를 장판 틈마다 최대한 끼워 넣고 나오는 길, 봉사자 A(30)씨는 “봉사를 하고 나면 뿌듯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찜찜하다”며 계속 뒤를 돌아봤다.

이날 봉사에 나선 최민국(27)씨는 “시민들이 직접 돌 하나하나 닦아 복구했던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처럼 많은 손길이 오래 닿아야 할 것 같다"며 “하루 이틀 해서 복구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현관 앞이 물에 잠겨 있다. 최은서 기자

“현장을 보니 어떤가요, 내일도 그곳으로 봉사자가 투입돼야 할 것 같던가요?”

봉사가 끝나고 귀가하던 길에 주민센터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단박에 “그렇다”며 “금방 복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결국 이 집에 살던 이들은 이날은커녕 최소 며칠은 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었다. 수재민 대피소가 마땅치 않아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던 어르신의 넋두리가 귀에 맴돌았다.

“아이고, 물이 영영 안 빠져서 어떡해. 당장 오늘 밤에는 또 어디서 자야 하나.”

모든 걸 잃은 노인들은 말이 없었다

"갑자기 큰일을 당하신 분들이라 좋은 의도를 가지고 봉사를 왔더라도 예민하실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강남구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이재민들을 대할 때 말과 행동에 마음을 써 달라"며 몇 차례나 당부했다. 그러나 기자가 자원봉사에 나선 강남구 논현동 한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에 들어서자, 이런 부탁과 관계없이 말수가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6평 남짓의 반지하 주택에 사는 노부부의 단출한 살림살이는 오물투성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자원봉사자들은 곧 정리를 시작했다. 노부부는 부엌을 정리하려는 기자를 향해 힘없이 읊조렸다. "빨간색 압력 냄비만 빼고 다 버려 주세요. 밥을 지어야지, 그래도...."

집을 치우는 내내 노부부는 말이 없었다. 주방에 설치된 싱크대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젖은 골판지처럼 부서져 철거업체 없이도 해체가 가능할 정도였다. 서랍과 탁자, 옷장 등 다른 목제 가구들의 사정이 모두 비슷했다.

싱크대 찬장에 쌓여 있던 냄비와 그릇, 반찬통을 차례차례 쓰레기봉투 안에 밀어 넣고, 물에 불어 죽처럼 바닥에 진득하게 퍼진 국수 소면을 닦아 내자 빨간색 압력솥이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노부부의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살림살이들은 집 밖으로 하나하나 치워졌고, 어느새 반지하 방에는 옷가지 몇 벌과 낡은 압력솥만이 남았다.


기자가 침수 피해 가옥 자원봉사를 간 서울 논현동의 한 반지하 주택의 세간들. 전혼잎 기자

쓰레받기와 대걸레로 바닥에 고인 물을 밀어내고 닦아 냈지만, 채광이 좋지 않아 어두침침한 터라 물기가 마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텅 비어 버린 방을 둘러보며 노부부는 “얼마 전에 냉장고를 새로 샀는데 못 쓰게 됐다”라며 아쉬워했다.

'정부에서 어떤 지원을 해주나'라고 묻자 노부부는 고개를 젓고는 "어떻게 될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옆집의 사정도 비슷했다. 장판까지 들어내 남은 물건이 전혀 없는 80대 노인의 집은 천장까지 곰팡이가 촘촘히 슬어 있었다. 묵묵히 바닥을 닦던 노인에게 '어디서 주무시나'라고 물었지만, 그는 "여기저기서 잔다"며 말을 아꼈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내놓은 쓰레기들을 기자가 들여다보고 있다. 함께 현장에 투입됐던 동료 봉사자가 촬영했다.


몇 시간 일했는데 모기에 수십 곳 뜯겨

정리를 마치자 피부 여기저기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최고 기온이 32도를 기록한 날이라 내내 흘렸던 땀이나 구정물 때문인가 싶었지만, 집에 돌아와 보니 온몸이 모기에게 뜯겨 있었다. 고작 몇 시간을 머무르는 사이 스무 곳 넘게 모기에 물린 모양이었다. 수해로 오염된 지역의 경우 물웅덩이에 모인 모기로 병이 전파될 수 있을뿐더러 피부병 등 감염병에도 취약하다.

이 공간이 언제 다시 '집'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재민들은 "나머지 뒷정리는 우리가 하겠다"면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에게 박카스 등 에너지 음료를 손에 쥐여줬다. 자원봉사자들이 복귀하는 와중에도 곳곳에서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다른 이재민이 적지 않았다. 지하에 위치한 한 초밥집에서는 이날 오전에야 겨우 물이 빠져 수족관 등 무거운 집기를 이제부터 옮겨야 한다고 막막해했다. 센터 관계자는 "반지하 주택뿐 아니라 인근의 영동전통시장과 주변 상가도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외제차 주인, 이재민에 "물건 좀 치워라"

각 지방자치단체의 자원봉사센터(1365 자원봉사센터)는 독거노인 및 취약 세대 중심으로 침수 가구의 짐 정리 및 환경개선을 위해 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11, 12일 이틀 동안 강남구 수해 가옥 자원봉사에는 대학생부터 취업 준비생, 직장인, 군인, 외국인까지 200명이 모였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서울에서 4년째 거주 중인 이스라엘인 탈씨는 "평소에도 종종 자원봉사를 하는데, 강남에 비가 많이 왔다기에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신청했다"면서 "피해 복구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경기 오산에 거주하는 이혜진(22)씨에게 강남 지역에 자원봉사를 나온 이유를 묻자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K문화'를 화두로 꺼냈다. 이씨는 "한국 콘텐츠가 유행하며 전 세계에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재벌(chaebol)이라는 단어와 함께 반지하(banjiha)가 알려졌다고 한다"면서 "재벌이 사는 서울의 부유한 지역인 강남에 이런 반지하가 존재하고 또 자연재해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다른 봉사자 역시 "집이 강남이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오는 도중에는 고층빌딩과 깨끗한 거리만 보여서 과연 봉사할 곳이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면서 "막상 와 보니 막연히 생각했던 강남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주택이 많아 놀랐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같은 지역에 살고 있더라도 어려운 이들만 비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다세대 주택이 몰린 논현동 골목에는 집집마다 못 쓰게 된 세간들을 꺼내 놨다. 이런 짐들로 인해 차량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마찰도 벌어졌다. 한 외제차 차주는 이재민을 향해 "언제까지 물건을 쌓아 놓을 예정인가. 차를 빼야 한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침수 피해로 집기를 거리에 꺼내 놓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거리의 모습. 전혼잎 기자


자원봉사자 투입도 빈익빈 부익부

강남 내부에서의 불평등뿐 아니라 지자체에 따라 수해 지원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침수 피해로 주목받은 강남의 경우 자원봉사자가 적지 않았다. 한 집당 평균 4명씩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일부에서는 6, 7명이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반면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부족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기지역에서는 300명가량의 자원봉사자를 모집 중인데 지원자는 20명 내외에 불과하다.

또 강남에서는 장갑과 장화, 걸레, 빗자루 등 피해복구에 쓸 다양한 물품을 구 차원에서 제공했고, 수량 역시 넉넉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면서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개인적으로 지참할 것을 부탁하는 지역도 있었다.

노동시민사회단체연대체 '재난불평등추모행동'에서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이번 수도권 폭우를 두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조건에 놓인 이들이 기후재난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평등이 기후재난 위험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은서 기자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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