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의 국운이 꺾이기 시작했고 결국 왜적에게 왕조를 고스란히 바쳤음에도 영화 '한산'을 보는 내내 뭉클했다. 숙종임금이 지은 제문 한 구절도 떠올랐다. "절의에 죽는다는 말 예부터 있었지만 제 몸 죽여 나라 살린 일, 이분에서 처음 보네(殺身殉節 古有此言 身亡國活 始見斯人)."
문제는 삶과 죽음까지 바쳐 나라를 살릴 영웅이 늘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허망하게 무너진 조선, 그 원인이 궁금했고 나름 내렸던 결론은 조선 양반들의 '문약(文弱)', '무문농묵(舞文弄墨·문장을 교묘하게 꾸며 법을 희롱한다)', '공리공담'으로 모여졌다. 이에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이 오나라 문신들을 질타하는 장면에 격하게 공감했다.
"국가의 백년대계와 사직의 안위를 의논함에는 흔들리지 않는 치밀한 모책(謀策)이 있어야 한다. 그저 뭇 사람 앞에서 떠벌리고 부풀려 말하길 좋아하는 무리나 헛된 명성으로 사람을 속이는 무리가 끼어들어 함부로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자들은 말로 하면 따를 사람이 없으나, 실제 일이 닥치면 쩔쩔매다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속세의 썩은 선비들이 어찌 나라를 일으키고 큰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선비(儒)에도 군자와 소인이 있다. 군자다운 선비가 하는 일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두루 혜택을 끼치고, 후세에는 이름이 영원히 남는다. 그러나 소인배 선비는 붓으로 단숨에 천자를 써 내려가도 흉중에는 실상 한 가지 방책도 없는 작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하루에 만 마디의 글을 쓴다 해도 어디에 쓰겠는가?"
겉만 그럴듯하지 속은 텅 빈 지식인에 대한 통쾌한 일갈이다. 그럼에도 '군자 선비'인 전략가 이순신을 키워낸 조선이 왜 싸워보지도 못하고 망했는지 설명하기엔 아직 부족했다.
그러던 중 정병석 교수가 2016년에 쓴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를 찾았다. '착취적 신분제도, 폐쇄적 관료제도, 변질된 조세제도'를 표제로 '제도'를 통해 망국을 분석한 책이다. 가독성이 뛰어나 쉽게 읽혔다. 요점은 다음과 같다. "조선은 초심을 잃고 왕실·관료·지방호족이 모두 착취자로 변하고 동시에 지배층과 이데올로기를 위해 정신적 문화적으로 지독한 폐쇄 사회를 구축했다. 이런 분위기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도 최고의 제지술도 위축 일로였다. 게다가 상공업과 군사는 천시했으니, 부국강병은 언감생심이었다." 읽으면서 개안하는 느낌이 왔다.
박병련 교수도 2018년 '한국 정치·행정의 역사와 유교'에서 다음 같은 요지의 힌트를 주었다.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은 도덕성과 실무 능력을 아울러 갖춘 '진유(眞儒)'를 주창하면서 입으로만 큰소리치는 '부유(腐儒)'를 비판했다. 이에 관료를 뽑을 때 이념과 실무 능력을 함께 고려한 조선 전기는 국정의 효율성이 높았지만, 사림파가 집권하면서 이상적 관료의 조건은 실무 능력이 아니라 사상이 되었다. 자연히 관료들의 행정 능력은 떨어졌고 후기에는 관료들이 권력과 이념 투쟁에 몰두하면서 백성의 삶과 직결된 행정은 아전과 서리의 손에 맡겨졌다." 이념에 매몰된 실력 없는 관료들…, 왠지 익숙하다. 부언하면, 아전과 서리는 녹봉이 없었다. 죽어나는 건 백성뿐이었다. 읽을수록 기시감에 어지럽다. 나는 지금 조선에 사는가 한국에 사는가.
작년, 정 교수는 다시 '대한민국은 왜 무너지는가'라는 속편을 냈다. 우리가 조선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돼서라고 한다. 관련 인터뷰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지식인은 '아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려고 '아니다. 하지만'이라고 말하는 지식인이 상당수예요. 지식인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목소리를 내야 해요. 희생하려는 자가 보이지 않아 답답합니다."(매일경제, 1월 15일)
77주년 광복절에 생각해본다. 이제 대한민국은 조선왕조에서 독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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