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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자리 누구 거겠어' 승진카드로 회유…"퇴사 주저한 내 자신에 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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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뻔한 거짓말에 속아 3년을 허비했습니다. 서랍에 넣어 둔 사표를 수십 번 꺼냈다가도 승진을 들먹일 때마다 '혹시 모르니 조금만 더 참자'며 버텼는데, 더는 미련 없습니다."
퇴사를 결심한 직장인 A(36)씨
사표를 가슴에 품고만 다니던 A(36)씨는 이달 말 미련 없이 사표를 내기로 결심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마다 '퇴사충동'이 끌어올랐지만 "A대리가 선임인데 팀장 자리 누구 거겠어. 조금만 기다려봅시다"라는 사장의 회유를 믿고 또 3년을 참았다.
A씨가 비교적 이른, 입사 5년 차에 '팀장 승진'을 기대할 수 있었던 건 이 회사의 업무 환경 때문이다. 공공기관 지역센터라 일이 안정적이고 입사 희망자가 많은데도 퇴사자가 많다 보니 채용 공고가 꾸준히 올라온다. '퇴사 물결' 속에서도 '꿋꿋이 버틴' A씨는 입사 2년 만에 사내에서 경력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고, 다시 3년이 지나서는 최고참이 됐다. 그러니 사장의 '승진 제안'은 구조적으로는 실현 가능했다.
지난 5년 동안 A씨는 회사를 떠나는 많은 동료들을 지켜봤다. 퇴사율이 높다는 건 일하는 환경이 좋지 않다는 뜻. 기획부서 소속인 그는 회사를 가장 오래 다닌 죄(?)로 가장 많은 일을 도맡아 했다. 사업부서에서 맡는 고객 응대는 물론 신입사원 대상 오리엔테이션도, 떠난 직원의 업무 인수 인계도 모두 그의 몫이니 한숨을 내쉴 수밖에.
'겉보기엔 번듯해'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많은 이 조직을 숱한 직원이 떠난 이유는 사장의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다. 괴롭힘의 유형도 다양하다. 우선 ①직원들을 대놓고 차별한다. 사장은 새로 들어온 직원이 또 사표를 낼까 전전긍긍하며 복잡한 업무를 모두 A씨에게 몰아줬다. A씨는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했다. ②업무 성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정확하게 업무 지시를 하지 않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모욕했다. ③올해 초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된 A씨에게 "하던 일은 마무리하고 병가를 가달라"며 퇴근하는 그를 붙잡았다. 퇴사자가 많아 A씨를 대체할 인력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일상이 되어가는 사이 A씨의 신체에도 변화가 생겼다. A씨는 "3년째 '승진카드'로 회유하며 온갖 괴롭힘을 일삼는 사장 탓에 탈모가 생겼다"며 "일이 고되면 마음이라도 편해야 '가족 같은 회사'라고 생각하고 다닐 텐데 환경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 사장이라 작은 희망도 안 생긴다"고 토로했다.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의 눈으로 봤을 때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회사를 박차고 나오지 않은 A씨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회사의 발전보다 개인의 만족이 중요한 MZ세대 사이에선 1년 이내 조기 퇴사자가 드물지 않고,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길 원하는 갈망이 과거 세대만큼 뜨겁지 않아서다.
실제 취업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달 기업 1,124개사를 대상으로 '1년 이내 조기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10곳 중 7곳(68.7%)이 'MZ세대의 조기퇴사율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들은 그 이유로 'MZ세대는 개인의 만족이 훨씬 중요한 세대라서'(60.9%, 복수응답), '평생 직장 개념이 약한 환경에서 자라서'(38.9%), '호불호에 대한 자기 표현이 분명해서'(30.7%), '시대의 변화에 조직문화가 못 따라가서'(29.3%), '이전 세대보다 참을성이 부족해서'(28.6%), '노력으로 얻는 성과에 대한 기대가 낮아서’(19.9%) 등을 꼽으며, 달라진 직업관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 MZ세대가 조기 퇴사를 결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 역시 MZ세대인 A씨의 직업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면서까지 A씨가 3년을 버틴 이유는 '5년 차에 승진하면 기대보다 빨리 연봉이 오르고 이직할 때 더 나은 조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A씨는 실낱 같은 희망이던 '승진카드'조차 사장의 '달콤한 거짓말'이라는 걸 지난달 우연히 알게 됐다. 센터 일을 도맡아 하는 탓에 보고도 잦았던 그는 사장실에 보고서를 내러 갔다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봤다. 상급 공공기관 보고용 자료엔 '승진 대상: 없음'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 A씨는 "그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며 "순진했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휴가를 내고 이직 준비를 하며 면접을 보고 있다.
'승진카드'만 믿고 업무 강도를 버텨온 A씨가 사장으로부터 보상받을 길은 없을까. 안타깝게도 사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대해 구제받을 수 있는 방안은 없다. 권남표 노무사는 "사장이 약속한 승진을 이행하라는 명령을 구하는 소송을 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런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미 회사를 다닐 수 없는 파탄 관계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소송에 앞서 행정 처분을 알아볼 수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행정 처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A씨가 퇴사 후 소송을 한다면 이미 '승진'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실현할 수 없어 소용이 없고, 승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장에게 가해지는 행정 처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장에게 경각심을 줄 수는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체 행동으로 보인다. 권 노무사는 "사장이 A씨 말고도 다른 직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약속을 안 지켰을 수 있다"며 "노동자들이 함께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파업을 한다거나 약속을 지키라고 강하게 한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A씨는 소송을 제기할지 고민하다 결국 조용히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길고 긴 소송을 거쳐 법원 판결이 나올 때쯤 그는 이미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을 터. "아무런 이익을 얻을 수 없는 데다 아픈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비록 회사를 떠나더라도 나중에 배상을 받고 싶다면 '구두 약속'이 아닌 '서면 약속'을 받아 두는 게 좋다. 서면을 작성하면 우선 사측이 책임감 없는 약속을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퇴사한 이후 소송 등을 통해 배상을 받을 수도 있다. 권 노무사는 "약속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는 상식이 기업문화로 자리 잡아야 하는데 사장들이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사회적으로 비난받는다는 긴장감을 가질 수 있게 공론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A씨가 가장 바랐던 '승진카드' 대신 직장 내 괴롭힘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는 있다. 사례가 구체적이고 업무의 적정 범위를 벗어나 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회사가 공공기관 지역센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상급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권 노무사는 "공공기관은 높은 수준의 청렴도가 요구되고, 산하 센터를 관리할 의무도 있으므로 상급 기관에 징계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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