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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우영우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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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우영우 나무'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그 나무를 보면서 우리 동네 나무들이 절로 떠올랐다. 마을에는 각각 수령 240년, 50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다. 이 보호수들과 함께 더욱 장관을 이루는 것은 240년 보호수가 있는 자리로부터 우리 집을 지나는, 약 80여 미터 길에 걸쳐 있는 30여 그루의 느티나무들이다. 지금 같은 한여름에는 100년쯤 살았을 그 나무들이 숲 터널을 이룬다. 아래를 지날 때면 그야말로 비밀의 숲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곤 하는데 특히 구부러진 좁은 길은 그 은밀함을 더한다.
작은 다리를 건너 대문 없는 마당으로 들어서면 역시 오래된 느티나무와 중국 굴피나무, 구상나무들이 한쪽에 우뚝우뚝 서 있고, 드디어 수십여 그루의 소나무숲이 펼쳐진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정말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데, 내 눈에는 정말 대단하다. 이 나무들이 펼쳐 내는 풍경에 반해 2년여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지금의 터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책방과 살림집을 하기에는 집이 너무 컸지만(무려 4층이나 된다!), 1층은 책방으로 하기에 적절했고 황토와 소나무로 지은 집도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길가의 나무들이 은근히 걱정됐다. 오래된 집 몇 채가 그림처럼 앉아 있는 이 마을도 언젠가 개발될 텐데, 과연 길가의 나무들이 안전할까 싶은 것이다. 개발이란 기치 아래 숲이 사라지고, 산 하나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나무 몇 그루쯤은 문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용인 반도체클러스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여의도보다 넓은 대규모 산업단지. 일터를 따라 사람이 들어오고, 그들을 따라 집과 상가도 들어설 것이다. 그 발표가 난 직후 땅값이 들썩이고 곳곳에 부동산 사무실이 차려진 이유다.
당장 수용이 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어서 비교적 조용하게 지내던 어느 날 집 앞 너른 터의 주인이 바뀌었다. 이사 직후 봄이 되자 버드나무숲이었던 그곳에서 피어났던 연둣빛 새순 무리는 정말 황홀했다. 그러나 주인이 바뀌고 버드나무는 일제히 제거됐다. 무려 3일에 걸쳐 사라지는 버드나무 숲을 보며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내 땅도, 내 나무도 아닌데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나는 커피를 내려 일하는 사람들에게 갖다 주며 혹시 무엇이 들어설 예정이냐고 묻곤 했다. 당연히 그들은 아는 것이 없었다. 당장 무엇이라도 들어설 것 같던 그 땅은 아직 다행히 비어 있다. 잡풀이 우거진 그곳에 가을이면 수크령이 무더기로 피어난다
곧잘 배낭을 꾸려 집을 떠났던 나는 이곳에 자리를 잡은 후 떠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 동네를 슬슬 돌아다닌다. 나무들이 펼쳐 놓는 속 깊은 이야기들이 매일 나를 부르기 때문이다. 나는 일 없이 그 속을 왔다 갔다, 그들의 은밀한 속삭임을 듣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간직한 마을의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오늘도 나는 부슬비가 내리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계곡 물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곧 사방에서 떨어질 낙엽들을 넋 놓고 바라보겠다 싶어 얼른 지금의 여름 나무 속으로 들어갔다. 100년쯤 후 나는 이렇게 말할 거야. 옛날 요 앞에 시골책방이 있었는데 그 책방에서는… 나는 길가에 서서 그들의 속닥거림을 가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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