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부가 최근 코로나19 피해와 금리급등에 따른 소상공인과 청년층의 채무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25조 원+α’ 규모의 금융지원을 통한 부채 경감책을 내놓자 침묵하던 은행권이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며 난색을 표하는 모습이다. 정부안은 소상공인 채무조정을 위한 ‘새출발기금’에 30조 원,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에 8조5,000억 원, 안심전환대출에 45조 원 등을 투입하는 등 수치만 따지면 막대한 규모다.
□ 정부는 이 같은 지원을 통해 소상공인 등에 대한 전반적 재무구조개선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특히 새출발기금을 통해선 기금만큼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에 나선다. 골자는 기존 대출을 장기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하면서 대출금리를 연 3∼5%로 낮춰주고, 특히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 차주의 원금 중 60∼90%를 탕감해주는 것이다. 이에 은행권은 지난 2일 이례적으로 시중은행 여신 실무자들이 은행연합회에 모여 새출발기금 채무조정안에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 은행권 우려는 우선 채무감면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캠코 매각채권(무담보)에 대한 원금감면비율이 60~90%인데, 그 수준에 맞춘 감면은 부실 차주를 양산하고,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금융회사 채무 중 어느 하나의 연체 일수가 10일 이상 90일 미만인 자’로 설정된 ‘부실 차주’의 범위가 너무 넓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편, 이복현 금감원장은 앞서 은행권의 우려에 “지금은 돌발성 외부충격에 소상공인 등이 단기 충격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원책이) 도덕적 해이 측면과 상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논란 증폭을 차단했다.
□ 보편적 채무감면이 도덕적 해이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는 당연하다. 고의적 채무 불이행 풍조는 물론, 성실 채무자와의 형평 문제도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엔 은행들의 우려가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다. 금융위기 때마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갖다 쓰고, 이자장사로 보너스 잔치를 해서만은 아니다. 소상공인 등 취약자들의 위기가 사회부조를 가동해야만 할 정도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옥석을 가리되, 도울 수 있는 만큼 지원에 성의를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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