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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지나면 국민 3분의 1이 빈곤층"... 영국이 떨고 있다

입력
2022.08.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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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부터 연 675만 원 가계 부담 전망
"전기·가스비 내지 말자" '지불 보류' 운동도
경제·정치 불안에 "개발도상국 같다" 지적

겨울은 멀었지만, 영국은 벌써 떨고 있다. 가스, 전기 등 에너지 공급가가 상승하면서 가계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올겨울을 넘기면 전체 가계 3분의 1이 빈곤층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에너지 요금을 납부하지 말자'는 시민들의 조직적 저항 움직임도 있다.

8일 영국 런던의 은행 앞을 걷고 있는 시민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8일 영국 런던의 은행 앞을 걷고 있는 시민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1050만 가구 빈곤 전망... "끼니 걸러 돈 낼 판"

에너지 컨설팅 업체 콘월인사이트는 내년 1월부터 영국 가계당 연간 에너지 요금이 최대 4,266파운드, 한화로 약 675만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9일(현지시간) 내놨다. 난방비를 포함한 에너지 요금으로 월평균 355.5파운드(약 56만 원)를 써야 한단 뜻이다. 현재의 월평균 164파운드보다 2배 이상 더 내야(116% 증가) 한다는 뜻이다.

영국은 에너지 공급가를 추정해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상한선을 미리 정해둔다. 공급가 추정치를 콘월인사이트가 분석한 결과, 내년 1월 이후 전체 가계 3분의 1이 빈곤층으로 분류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영국 연료빈곤종식동맹(EFPC)은 내년 1월부터 3개월 동안 겨울철 난방 등을 포함한 요금을 내고 나면, 약 1,050만 가구가 빈곤선 아래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영국은 중간소득 60% 이하에 해당할 경우 '빈곤하다'고 규정한다.

당장 올해도 문제다. 콘월인사이트는 10월 1일부터 적용되는 에너지 가격 상한이 3,582파운드(약 567만 원)일 것이라고 봤다. 작년 10월엔 최대 월 26만 원만 내면 됐는데, 이젠 47만 원을 내야 한다. EFPC 대변인은 "수백만 가구가 에너지 요금을 내기 위해 끼니를 걸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7월 영국 런던에서 한 시민이 주유기를 잡고 있다. 영국 가계당 연간 에너지 요금이 내년 1월부터 4,266파운드, 한화로 약 675만 원에 달할 것이라고 에너지 컨설팅 업체 콘월인사이트가 9일(현지시간) 분석했다. 런던=EAP 연합뉴스

7월 영국 런던에서 한 시민이 주유기를 잡고 있다. 영국 가계당 연간 에너지 요금이 내년 1월부터 4,266파운드, 한화로 약 675만 원에 달할 것이라고 에너지 컨설팅 업체 콘월인사이트가 9일(현지시간) 분석했다. 런던=EAP 연합뉴스


"자동이체 해지해서 돈 내지 말자"... 대규모 서명

극단적인 에너지 비용 상승은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 공급량을 줄이며 발생했다. 유럽이 경제 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는 공급량을 조이는 것으로 보복했는데, 러시아발 공급량이 당분간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영국 입장에선 공급가를 높여 잡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해 '10월부터 2,900만 가구에 400파운드(약 63만 원)씩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부담을 상쇄하기엔 부족하다.

영국인들의 분노는 구체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요금 지불 보이콧'이 대표적이다. '돈 페이 유케이'(Don't Pay UK)라는 단체가 주도하는 이 캠페인은 '10월 에너지 비용 납부 관련 자동이체를 해지하자'는 게 골자다.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9만3,000명 이상의 시민이 서명했다고 인디펜던트는 보도했다.

내년까지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게 자명한데, 정부가 10월 조정하는 것도 모자라 1월에 또 조정하겠다고 나선 것도 분노를 샀다. 소비자 부담만 가중시키는 정책이란 것이다. EFPC 대변인은 "정부가 대중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미 빚을 진 영국인도 상당하다. 약 600만 가구가 평균 206파운드(약 33만 원)의 에너지 요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도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이 마치 개발도상국처럼 보인다"(덴마크 은행 삭소뱅크)는 경고까지 나왔다고 CNBC는 9일 보도했다. 경제적 불안에 더해 총리 교체에 따른 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있다는 점에서다. 크리스토퍼 뎀픽 삭소뱅크 거시경제분석 본부장은 "영국 경제는 으스러졌다(crushed)"고 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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