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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국가가 ‘정상적인 국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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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갈등을 넘어 존중과 공존을 말하는 시대가 됐지만, 실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색한다, 공존’은 다름에 대한 격려의 길잡이가 돼 줄 책을 소개합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해마다 광복절에는 강제동원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중심으로 일본의 사죄나 국가배상 문제가 수면에 오른다. 식민지배를 받은 약소국이자 정전 중인 분단국가라는 역사적 경험은 일제 해방 후 한국 사회 전반을 ‘군사화’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독립 후 부강한 나라가 되고자 했던 한국은 군사주의를 기반으로 한 효율성과 젠더화를 국가의 기제로 삼았다.
군사주의와 그에 따른 성별 정치학을 연구하는 신시아 인로는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에서 행정부가 군대를 배치하는 일을 더 쉽게 만드는 방식으로 헌법 해석하기, 아이들에게 국가의 과거는 흠 하나 없이 깨끗하다고 가르치기, ‘정상적인 국가’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라고 정의하기와 같은 것들이 의문 없이 진행되는 것을 일상의 군사화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 세 가지 명제는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다. 미군 기지를 배치하고 그에 따른 향락시설을 제공하기 위해 ‘특수위안시설’인 기지촌이 정착됐다. 교과서에는 한국이 ‘평화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사실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국가 안보는 '군사력'에서 나온다고 정의한다. 사드(THAAD) 배치와 강정해군기지 건설 등 군대와 무기를 확보하는 일은 ‘국가 안보를 위한 일’로 설명된다. 최근에는 태국, 스리랑카 등의 분쟁지역에 한국산 무기를 수출했다. K팝과 같은 문화 현상에는 ‘상륙’과 ‘정복’의 서사가 등장한다. 이를 통해 한국인은 인종적으로 위계화되고 한국은 강한 국가라는 자아 이미지가 완성된다.
인로는 페미니즘이 지구화와 군사화의 연관성을 밝힐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페미니스트 호기심'을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지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거래하는 것과 같은 가시적인 것에서부터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운동화나 밀리터리룩 등의 패션 아이콘과 같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조직은 특정 유형의 남성성을 특권화하고, 그 반대 유형을 여성화하며, 대부분의 여성성을 하찮게 만드는 방식으로 남성화되었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일상의 군사화를 다시 볼 것을 제안한다.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력을 투입하는 나라에 공장을 설립하는 기업이나 군사 무기를 국제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군사화와 지구화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 군사화와 지구화의 교차를 페미니스트 호기심으로 살펴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인로는 1960~70년대 나이키를 비롯한 많은 운동화 공장들이 한국에 위치했던 이유를 지구화와 군사화의 연계에서 찾는다. 군사정부는 ‘국가 안보’, ‘민족 자존심’, ‘근대화’, ‘산업 성장’ 등의 개념을 통해 ‘참한’ 남한 여성들에게 성실하게 일하는 주체가 되어라고 설득했다. 노동자로 일하더라도 그녀의 결혼 자본에는 흠집이 가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저임금 임시직에 여성 노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이는 외국 기업이 싼값에 비혼 여성들의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나이키가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 중 한국을 선택한 데도 냉전의 절대적 동맹국이라는 군사질서가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부산은 1970년대 ‘세계 신발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국의 경제성장 기점이 되었던 가공공업이 가능했던 것은 군사정권의 강력한 통치와 군사주의 지구화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가져온 토대가 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는 반공국가 남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이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에까지 진출했다.
지난 8월 9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가 서울중앙지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퐁니사건’의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은 1968년 2월 12일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군인들이 7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2020년 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경제강국이자 군사강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한국사회는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해석할지, 이번 광복절에는 이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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