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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으로 대우받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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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의 수도권 집중호우 참사
위기대응 컨트롤타워는 어디에
국민 포용과 책임감의 리더십 절실
8월 8일 저녁부터 9일 새벽 사이 80년 만의 폭우라는 빗줄기가 서울과 수도권을 휩쓸어버린 시각,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에는 가족의 귀가를 걱정하고 멀리 사는 부모님의 안부를 염려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편이 퇴근하다 지하도로에서 물살에 갇혔다, 학원에 간 아이가 도로 침수로 오도가도 못 하고 있다,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옹벽이 무너졌다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등등. 더 안타까운 사연은 반지하 방에 빗물이 밀려들어와 아이들과 밤새 퍼내고 있다거나 퇴근길 운전 중 물살에 휩쓸려 죽을 뻔하다 간신히 살아 나왔다는 이야기까지 수많은 게시글과 위로의 댓글들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충격, 염려, 불안, 안도와 함께 터져 나온 또 다른 감정은 분노였다.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퇴근했던 서울시장이 밤 10시경 시청으로 출근했다는 속보가 전해지고, 10시 30분경 행안부 장관이 세종상황실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속보가 전해졌다. 한밤중이 돼서야 대통령은 자택 주변이 침수돼 집에서 보고를 받고 있다는 짧은 속보가 전해졌다. 잠시 그쳤던 비가 새벽에 또 쏟아질 것이라는 예보로 새벽녘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이 상황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는 어디에 있나, 최고 책임자는 누구인가, 위기관리센터는 어디인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중심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대통령 페북의 짧은 메시지와 네댓 관료들과 회의 중인 듯한 한덕수 총리의 사진이 전해졌지만 인터넷 포털의 댓글 창을 채운 것은 '각자도생' '무정부상태' '이게 나라냐'였다.
세월호 사건 때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 떠올랐다면 지나친 염려일까? 위기대응을 총괄하는 상황실은 어디에 있는지,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바로 몇 해 전 겪은 집단적 트라우마가 불안의 무게를 더했다. 그 때문에 형식적이라고 해도 노란 점퍼를 입고 일사불란하게 관료들을 지휘하는 대통령의 긴장한 눈빛은 지난밤엔 꼭 필요한 매직 같은 것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권력을 동원해 국민들을 안전하게 이끌겠다는 지도자의 의지와 능력, 그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상황에서 한 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그의 일성(一聲)을 국민들은 기다렸다. 기대를 무색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던져졌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 여기에 언론의 협조를 구한다는 곁들임은 솔직함인지, 상황판단의 부족인지 해석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의 국민은 누구인가. 어느 사회에서나 구성원은 동일하지 않다. 성별과 연령, 계층이 다르고 사는 곳과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
많은 여성들은 그의 '국민'에 자신들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성평등 정책은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문처럼 던져질 때면 자신들이 밀쳐지고 있다고 느낀다. 수십 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명을 건 싸움을 경찰의 무력시위로 꺾어버리는 통치 앞에서 자신들이 국민의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만 5세 아동의 초등학교 입학을 추진하겠다는 장관에게 당사자의 의견은 왜 듣지 않느냐고 눈물 흘리는 어머니들은 국민의 대우를 받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10일은 새 정부 출범 3개월이 되는 날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윤 대통령의 날개는 어디에 있는가. 진정 국민을 보고 간다면, 그의 국민은 성별도 연령도 계층도 지역도 정치이념도 넘어서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차이들을 껴안고 리더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되새겨 갈 때만 그의 날갯짓은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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