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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물난리에도..."별일 없었지?" "무사출근 축하" 꿋꿋 출근 'K직장인들'

입력
2022.08.09 14:30
수정
2022.08.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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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물난리에 귀가 전쟁 "전쟁 피란길 같아"
1호선 일부 구간 선로 침수돼 운행 중단도
"어떡해" "집에 어떻게 가"...시민들 '발 동동'
자정 넘어 귀가해도...출근 위해 일찍 잠, 새벽 눈떠

9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쟁 피란길도 아니고 집에 못 들어갈 뻔했어요. 그 난리에도 'K직장인'답게 꿋꿋하게 출근길에 올랐죠."

경기 부천에 사는 직장인 이한별(31·가명)씨는 지난 8일 밤 하마터면 귀가하지 못할 뻔했다. 퇴근 후 서울 구로동 쪽에서 운동을 마치고 오후 10시쯤 나왔는데 1호선 구로역에 '열차 없음'이라는 푯말이 놓여 있었다.

그러자 구로역을 이용하려던 사람들은 이도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렸다. 그 시각 오류동~개봉역 구간 선로 침수로 인해 인천 방향 열차가 중단됐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밤 11시가 넘자 금청구청역 선로 침수로 경부선 구간 열차 운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등 1호선 운행이 마비됐다. 혹시라도 열차가 올지 몰라 승강장에 내려간 사람들은 "아휴~" 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어떡해" "어쩜 좋아" "집에 어떻게 가" 등 근심 가득한 말을 하며 휴대폰으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돌렸다.


8일 오후 경기 군포시 금정역 1호선 승강장 전광판에 선로 침수로 인한 상하행 운행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8일 오후 경기 군포시 금정역 1호선 승강장 전광판에 선로 침수로 인한 상하행 운행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그렇다고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차도는 무릎 정도까지 물이 차올랐고 버스는 정류장에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버스 문을 열면 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씨는 다행히 한 지인의 차량을 이용해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정을 훌쩍 넘겼다. 그래도 급하게 잠을 청했다는 이씨. 그는 "내일 출근을 위해 빨리 잠자리에 드는 내 자신이 좀 웃기면서도 안타까웠다고 할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직장인이니 어쩔 수 없죠."

서울 서초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진영(35·가명)씨는 동료들로부터 때아닌 박수를 받았다. 9일 오전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회사 동료들이 "무사출근 축하"라며 환영해 준 것. 그는 전날 운전대를 잡고 늦은 퇴근길에 올랐다가 강남 인근 도로가 침수됐다는 친구들의 전화에 차를 돌렸다. 차를 회사에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에 전날 쏟아진 폭우에 침수, 고립된 차량들이 뒤엉켜 있다. 뉴스1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에 전날 쏟아진 폭우에 침수, 고립된 차량들이 뒤엉켜 있다. 뉴스1

하지만 이날 아침 출근길은 녹록지 않았다. 전날 침수된 차량들이 도로를 점령해 '출근길 대란'이 펼쳐졌다. 버스와 차량들이 뒤엉켜 '빵! 빵!' 경적을 울려대기만 했다. 그런데도 박씨는 지각하지 않고 회사에 도착했다. 그는 "아침 출근길이 막힐 것 같아서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며 "직장생활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인데도 직장인이라는 숙명 때문인지 새벽에 눈이 떠지더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팀장급인 주은진(45·가명)씨는 무사히 출근한 팀원들에게 "어제 별일 없었지?" "출근하느라 고생했다" 등으로 아침 인사를 대신했다. 주씨는 "30분 이상 지각한 팀원이 있었는데 보통 같으면 화가 났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무사히 출근해줘서 고마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SNS 실시간 중계로 도움 준 시민들의 '손가락 통신'

8일 밤 서울 방배동의 차도 일부가 흙탕물에 잠겨 있다. 흙탕물은 차츰 인도쪽으로 차올랐다. 독자 제공

8일 밤 서울 방배동의 차도 일부가 흙탕물에 잠겨 있다. 흙탕물은 차츰 인도쪽으로 차올랐다. 독자 제공

"7호선 이수역 무정차 통과" "방배동 차도 일부 침수" 서울 방배동에 사는 직장인 김소희(30·가명)씨는 전날 밤 친구들로부터 끊임없이 문자를 받았다. 친구들은 김씨의 '무사귀가'를 바라며 뉴스를 보고 물난리 상황을 전달했다.

7호선을 이용한 김씨는 친구들이 말한 대로 열차가 이수역에 무정차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물이 선로까지 내려와 출렁히는 걸 직접 목격해서다. 지하철에서 나와 마을버스를 타려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흙탕물이 인도까지 차올라 있었다. 버스를 타려면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 무릎까지 젖는 걸 각오해야 했다.

김씨는 그냥 걸어가는 쪽을 택했다. 그 이유는 이랬다. "친구들이 버스 타는 것이 위험하다고 걷는 게 낫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 정거장 거리를 걸었어요. 다행히 그때 폭우가 좀 잠잠해졌거든요."

8일 밤 폭우로 침수된 지하철 이수역에서 관계자들이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밤 폭우로 침수된 지하철 이수역에서 관계자들이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전날 오후 11시까지 서초구와 강남구, 구로구, 동작구 등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서초구의 경우 336㎜, 강남구 300㎜, 구로구 288㎜, 동작구 380㎜ 등 물폭탄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지하철 침수는 2·3·7·9호선 등 한강 이남 노선에서 피해가 컸다. 9호선 동작역은 침수로 아예 역사를 폐쇄했다. 7호선 이수역·상도역·광명사거리역, 3호선 대치역, 2호선 사당역·선릉역·삼성역 등이 침수됐다.

9일 오전 반포대교 밑 한강 수위가 나무 위까지 올라와 있다. 독자 제공

9일 오전 반포대교 밑 한강 수위가 나무 위까지 올라와 있다. 독자 제공

이런 상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실시간 중계됐다. 시민들이 물난리 현장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SNS 등에 올리며 소식을 전해서다. 이수역 승강장 쪽 천장이 무너져 내려 물이 쏟아진 순간도 한 시민의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침수된 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자동차 위에 앉아 있는 사람, 역대급 재난 상황에서 침수된 도로에서 수영하는 사람 등 숨은 이야기들은 시민들의 발 빠른 '손가락 통신' 덕분이다.

직장인 이수연(36·가명)씨도 출근길에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친구가 '한강 수위가 높으니 잠수교 등은 피해서 출근하라'고 사진과 문자를 보내줘 미리 피해서 운전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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