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휴업 폐지론에 골목상인들 폭발
현실·공정 외면 규제완화 누가 하랬나
‘다 바꿔’보다 ‘좋은 균형’ 찾기로 가야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바로잡고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가 곳곳에서 지나쳐 무리를 드러내고 있다. ‘지나치다’는 건 새 정책이든 기존 정책의 보정이든, 적정선을 지나쳐 또 다른 실패의 영역으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불안, 여당인 국민의힘의 한심한 지리멸렬이 국민의 정서적 반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면, 정책에서의 무리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신뢰의 토대를 근본부터 무너뜨리는 형국이다.
물론 현 정부가 정책에서까지 그토록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지만, 차분히 살펴보면 실제 잘못보다 더 야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어설픈 ‘전략적 모호성’에서 떳떳한 ‘원칙과 행동’으로 과감히 선회한 대외·통일정책이나, 허황된 ‘탈원전’ 계획을 접고 보다 현실적 방향으로 신속히 궤도를 수정한 에너지정책 등은 타당하다.
비대하고 해이해진 공공부문에 다시 혁신의 시동을 건 것도 잘하는 일이라는 국민이 많다. 문제는 일련의 황당한 정책적 무리수들이 그런 노력과 진전들을 일거에 무위로 돌려버리는 ‘돌발사고’가 속출하고 있는 현실이다.
취임하자마자 대뜸 초등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발표해 평지풍파를 일으킨 박순애 교육부 장관의 경우는, 일의 순서나 완급을 조절할 정무적 감각이나 역량이 전혀 없는 사람이 감투를 쓴 결과 빚어진 정책 참사다. ‘부자감세’ 비판에 다주택 양성화 우려까지 낳은 부동산 보유세 개편안도 반감이 만만찮다. 정부는 애써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지만, 향후 윤석열 정부의 ‘공정’에 심각한 의구심을 증폭시킬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적지 않다.
‘행정적 어설픔’과 적정선에서 ‘약간 어긋난 지나침’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사고’들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신뢰의 근본을 훼손할 정도라는 우려의 뿌리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아무리 단순하고 사소해 보여도, 그 하나하나는 윤석열 정부의 실력과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는 부표이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인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론도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본질적으론 윤석열 정부에 의구심을 제기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일각에선 이 문제를 단순히 소비자가 원하는 생활밀착형 규제완화 과제 정도로 여겼을 수 있다. 대뜸 대통령실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를 거쳐 공론화를 추진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사드 배치나 ‘칩4 동맹’ 가입 여부를 단순히 온라인 여론조사로 정할 수 없듯이, 이 문제 또한 애초부터 국민제안을 내세워 얄팍하게 추진할 일이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소비자 불만이 꾸준히 이어져온 문제이긴 하다. 업계 주장대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간의 경쟁구도가 이미 깨졌고 온라인 유통과 식자재마트가 부상하는 등 시장 변화를 감안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보호돼야 할 필요와 가치는 여전하고, 그동안 국민 사이에서도 공정과 정의에 비추어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따른 불편 정도는 감당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이해가 자리 잡은 만큼, 보다 신중히 추진돼야 했다. 요컨대, 윤 대통령 스스로 자유 못지않게 강조한 공정과 정의 등의 가치를 고려해 폐지론에 앞서 성의 있는 전통시장 육성책 등을 추진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국민이 윤석열 정부에 바라는 건 기존 정책방향을 요란하게 뒤엎는 게 아니라 보다 ‘좋은 균형’을 찾는 노력과 정책적 디테일이다. 요란하지 않으면 국민이 모른다고 여길 수 있지만, 우리 국민은 좋은 균형을 향한 작은 변화도 충분히 느끼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원숙하다. 신뢰회복을 위한 국정 방향과 스타일의 재정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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