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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탕감' 논란 새출발기금은 왜 지자체를 화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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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30조 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이 출범하기도 전에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17곳 중 12개 지자체 단체장이 모두 여당 출신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상한 일이죠. 손발을 맞춰도 모자랄 정부와 지자체가 새출발기금을 놓고 갈등을 빚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자체가 뿔난 이유를 알기 위해 코로나19가 발생한 당시로 돌아가 볼게요. 소상공인들이 생존을 고민할 처지였다는 건 누구나 알고 계실 거예요. 거리두기로 손님은 없는데, 인건비·임대료 등은 줄지 않으니 가게를 굴리기 위해선 어떻게든 대출까지 박박 끌어모아야 했죠.
그때 이들에게 손을 내민 단체가 바로 17곳의 지차제에서 운영하는 지역 신용보증재단(지역 신보)이에요. 지역 신보는 지자체 등의 출연금으로 운영되는데, 은행 대출을 받는 소상공인을 위해 보증을 섰어요.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보증은 함부로 서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소상공인이 워낙 어려우니까 지역 신보가 나선 거죠. 이 때문에 전국 지역 신보의 보증 잔액은 2019년 말 23조 원에서 올해 6월 45조5,000억 원으로 무려 2배 가까이 늘어났답니다.
그런데 이제 소상공인들이 이 돈을 갚아야 할 시점이 다가왔어요. 정부가 코로나19 기간에 대출 만기를 연장해 주고, 이자 상환도 유예해 줬는데, 그 조치가 10월부터 종료될 예정이거든요. 아직 코로나19 상황이 끝나지 않았지만, 대출을 무기한 연장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죠.
이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게 바로 새출발기금이에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위해 부실 또는 부실 우려가 있는 채권을 사들여 대출 부담을 낮춰주는 게 핵심 내용이죠. 차주에 따라 원금의 60~90%를 감면받거나, 대출 이자를 덜 낼 수도 있어요.
문제가 되는 건 새출발기금이 매입할 채권이 바로 지역 신보들이 보증을 섰던 채권이라는 점이죠. 부실 또는 부실 우려 차주가 은행에 돈을 안 갚게 되면, 보증을 섰던 지역 신보가 대신 갚아줘야 하잖아요. 이후 지역 신보는 해당 소상공인에게 그 돈을 회수해야겠죠. 이를 지역 신보가 소상공인에 대한 구상채권을 쥐고 있다고 표현한답니다.
새출발기금이 도입되면 지역 신보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이 구상채권을 팔아야 해요. 그런데 도대체 얼마에 팔아야 적정한 가격일까요. 현재 지역 신보들이 내부적으로 추정하는 금액은 부실 채권의 경우 34%, 부실 우려 채권의 경우 70% 정도 수준이에요. 지역 신보 입장에서는 '이 정도는 회수할 수 있으니 이 채권들을 팔 때 그 정도 가격은 받아야 한다'는 뜻이죠.
그럼 정부는 얼마까지 알아보고 있을까요. 현재 공식 입장은 "시장가에 기반한 공정가치 평가를 통해 채권을 매입한다"입니다. 그런데 금융위원회가 지난 추가경정예산 때 새출발기금을 마련하면서 국회에 제출한 자료가 있어요. 그때 밝힌 예상 매입가율은 평균 60% 수준이에요. 다만 지역 신보가 추정하는 금액과는 산출 방식이 달라 비교는 어려운 상황이죠.
비교는 어렵다 치더라도, 과연 정부가 60%나 챙겨줄 수 있을까요.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 자료를 보면, 실제 캠코가 2017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매입해 온 부실채권의 연간 매입가율은 3.45~39.5% 수준이에요. 60%엔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죠. 게다가 국회 정무위는 "(정부의) 매입가율이 지나치게 높게 측정되지 않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결국 정부와 지자체가 새출발기금을 놓고 벌이는 갈등의 원인은 돈 싸움이에요. 채권을 얼마에 사줄지를 놓고 벌이는 사전 신경전이라고 볼 수 있죠. 지자체는 정부가 비싸게 사 주길 바라고, 정부는 지자체가 싸게 넘기길 바라니까요. 같은 여당 출신이라 하더라도, 돈 앞에서는 얄짤없네요.
새출발기금을 둘러싼 갈등이 꼭 나랏일만은 아니랍니다. 싸게 사든 비싸게 사든 그 돈은 결국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는 국민 세금이거든요. 어떤 주체가 그 부담을 더 떠안느냐를 두고 싸우지만, 종국엔 국민 세금이 얼마나 더 지출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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