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정부, 역전세 유발 '공시가 150% 제도' 손질 검토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공시가 150% 이내. 전세금안심대출 보증 100% 가입 가능.'
인터넷에서 빌라 전세 매물을 검색하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전셋값이 정부가 산정해 발표하는 공시가격(부동산 가격의 지표) 150% 이내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전세금반환보증서를 받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세입자로선 안전한 매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근 한국일보의 '파멸의 덫, 전세 사기' 시리즈 보도(1일자 1·3면, 2일자 5면, 3일자 1·6면, 4일자 15면)를 통해 '공시가 150%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드러나면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도 제도 개선을 위한 실무 검토에 착수했다.
국토부 산하기관인 HUG가 취급하는 전세금반환보증(안심대출 포함) 상품은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셋값을 떼일 상황에 처했을 때 HUG가 전셋값 전액을 보증해주는 상품이다. 대신 HUG는 집주인을 상대로 법적 소송 같은 절차를 거쳐 임차인에게 내준 돈을 회수한다. 아파트를 비롯해 빌라, 주거용 오피스텔 세입자가 가입 대상이다.
다만 HUG는 보증서를 끊어주기 전 주택 시세를 조사하는데, 아파트와 달리 시세가 명확하지 않은 빌라는 '공시가 150%'를 1순위로 적용한다. 매매시세가 없더라도 전셋값이 공시가격의 150% 이내면 전세금반환보증서를 끊어준다는 얘기다. 매맷값과 전셋값이 같아도 보증 가입이 허용된다.
보증 대상을 넓히려는 취지겠지만, 거의 모든 빌라는 공시가 150%를 적용하면 전셋값이 매맷값을 역전하게 된다는 게 문제다. 실제 지난해 입주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 B빌라는 전셋값이 2억8,000만 원 안팎이다. 이 빌라의 공시가격은 1억8,600만 원. 공시가 150% 기준에 맞춰 집주인이 최대로 전셋값을 높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거래된 매맷값은 전셋값보다 적은 2억6,000만~2억7,000만 원. 이 빌라는 곧바로 '깡통 전세 주택'으로 전락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셋값으로 분양대금(매맷값)을 치르는 소위 '동시진행' 업자들이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 이들은 집주인이 원하는 시세(예시: 2억 원)보다 더 비싸게(2억5,000만 원) 팔아주는 대신 남는 차액(5,000만 원)을 수수료로 챙기는데, 비싸게 파는 비결이 바로 매매 호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전세를 놓는 것이다.
공시가 150% 제도를 이용해도 되고, 이미 입을 맞춘 감정평가사를 통해 감정가를 부풀리면 된다. 모두 HUG 보증서 발급 기준에 해당돼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결국 매맷값보다 더 비싼 전세금으로 세입자를 끌어들이게 된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엔 이런 방식으로 전셋값이 매겨진 신축 빌라가 수두룩하다. 시작부터 '깡통 전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지난 정부에서 공시가 현실화 정책에 따라 공동주택 공시가가 5년간 70% 가까이 뛴 영향으로 '빌라 공시가 급등→전셋값 동반 상승'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투자자가 임차인의 전세금 전액으로 빌라 매입비용을 충당하는 '무갭 투자'를 위한 완벽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올해 기준 전국 공동주택 평균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71.5%다. 여기에 HUG의 전세금안심대출(전세대출+보증) 기준인 공시가 150%를 곱하면 107.25%로 곧바로 전셋값이 매맷값을 뛰어넘게 된다.
정부도 공시가 급등으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공시가 150%' 제도를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그간 HUG가 관련 제도를 모두 은행에 위탁하고 사후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다 보니 문제가 커진 측면이 있다"며 "다만 공시가 수준을 확 낮추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여지도 큰 만큼 어떤 식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HUG도 "관련 제도를 선보인 2013년만 해도 공시가 현실화율이 낮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최근 들어 이런 부작용이 빚어져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9월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관련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