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을 쓸 수 있는 용기

입력
2022.08.05 04:30

박순애(오른쪽)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학제개편안 관련 학부모단체 간담회에서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가 발언 중 눈물을 보이자, 손을 끌어 잡고 달래려 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어. 실수가 아니라 반성이나 사과 없이 모른 체 지나가는 게 더 부끄러운 거야.” 여덟 살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잔소리를 쏟아 낸다. 아직 저 투명한 영혼 속에는 작디작은 자존심에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고도 외면하는 까만 마음이 자라나질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이 아니다. 누구나 잘못하거나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대신 어릴 적부터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배운다. 그러나 대부분 반성과 사과에 인색하다. 잘못을 시인하면 굴욕감이 드니까, 자기정당화 기제가 무너지니까,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으니까. 스스로의 실수와 오류를 인정하는 데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NYT) 대표 칼럼니스트 8명의 ‘릴레이 반성 칼럼’은 그래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다. 예컨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물가상승(인플레이션)에 대한 내 예측은 틀렸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1조9,000억 달러 규모 경기 부양책을 쏟아 낼 때 “인플레이션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오판한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 “예측 모델에 문제가 있었다”며 오류 원인 진단도 빠뜨리지 않았다.

세계적 칼럼니스트들이 ‘뇌피셜(근거 없는 주장)’을 내놨을 리 없다. 수많은 분석과 토론, 연구가 쌓이고 쌓여 나온 결론일 터다. 그럼에도 내 뜻이 맞다 고집하기보단 오류를 인정하고, 고민하고 새로운 시각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반성문’은 신뢰의 주춧돌이 된다.

지식인들의 고해성사를 보며 느꼈던 여운은 이 땅의 현실로 돌아오자 한숨으로 바뀐다. 정부가 돌연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이란 대형 폭탄을 던졌다. 마음의 준비를 할 예고편은커녕 교육 주체의 의견 수렴도 없었다. 여론의 된서리를 맞고서야 뒤늦게 부랴부랴 공론화에 나섰지만 역풍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분노를 촉발한 ‘역린’이 뭔지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포커스가 어긋난 방어막만 펼친 탓이다.

국민이 교육부에 원하는 건 예고 없이 남의 손을 덥석 잡으려는 장관의 일방적 스킨십(그것도 코로나19 시대에!)이나 눈물 닦으라고 느닷없이 내놓는 갑휴지가 아니다. 이번 논란에는 학제개편 부작용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사회적 파장이 큰 정책을 공론화나 숙의 없이 불쑥 발표한 정부 부처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투영돼 있다. 어쭙잖은 위로가 아니라, 주먹구구식 정책 추진이라는 ‘판단 미스’로 교육 현장과 학부모 혼란을 야기한 데 대한 사과가 1순위여야 한다는 얘기다.

불신의 비용은 비싸다. 한시라도 빨리 ①졸속 정책임을 인정하고 ②처절한 반성문을 쓰고 ③불안을 조성한 점을 사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추진하는 정책과정에는 두고두고 불안감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아직 정권 임기가 4년 9개월이나 남지 않았나.

추신: 온라인에는 ‘적절하게 사과하는 법’이라는 매뉴얼이 돌아다닌다. 피해야 할 표현 중 하나는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이다. 혹자는 여기에 “예상과는 다르게”라는 뜻이 숨어 있다고 해석한다. 굳이 사과의 기술까지 덧붙이는 이유는, 교육부의 학제개편안 관련 학부모 긴급 간담회에서 차관이 “본래 의도와 다르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해서다. 어떤 사과는 본래의 의미를 배반하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반성과 사과가 참 어렵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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