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차 한국을 찾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4일 통화했다. 윤 대통령은 "펠로시 일행 방문은 한미 간 대북 억지력의 징표가 될 것", 펠로시 의장은 "한미는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온 평화와 번영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방한에 앞서 중국의 격한 반대에도 이틀간 대만을 방문한 펠로시 의장은 이날 김진표 국회의장 회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 등 일정을 갖고 마지막 순방국 일본으로 이동했다.
정부는 윤 대통령의 펠로시 의장 응대를 두고 혼선을 빚었다. 전날 대통령실은 '만남 일정은 없다' '다시 만남을 조율 중'이란 상반된 메시지를 냈다가 대변인실을 통해 만남을 공식 부인했다. 대통령이 휴가 중이란 이유를 들었지만, 정작 윤 대통령은 당일 저녁 부부 동반으로 연극 관람 일정을 소화했다. 펠로시 의장이 3일 오후 입국할 땐 국회와 정부 어디도 공항 의전을 나가지 않아 외교 결례 논란도 일었다.
정부의 외교적 고민을 보여준 혼선이다. 당장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속내가 읽힌다. 중국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 강행에 반발해 4일 대만을 포위하고 상륙작전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사드 3불' '칩4' 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빚는 가운데 이달 수교 30주년(24일)과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우리 입장에선 펠로시 영접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북한 7차 핵실험 상황 관리를 위해서도 중국과의 소통 확대는 필수적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통화를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한미동맹 강화를 우선시하는 정부 기조에 썩 들어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을 제외한 4개 순방국은 모두 국가 정상이 펠로시 의장과 회동하는 점과 비교된다. 여당은 접견을 주장하고 야당은 정부 입장을 이해한다는 뒤집힌 반응도 연출된다. 미중 사이에서 부단히 균형을 찾아야 하는 한국 외교의 숙명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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