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넣자 죽은 돼지 심장이 다시 뛰었다…죽음의 정의 바뀔까

입력
2022.08.04 16:00
수정
2022.08.04 16:0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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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예일대 연구진 실험 성공
특수용액 투여하니 심장·간 등 기능 살아나
장기 이식 수술에 도움..."죽음에 대한 질문 남겨"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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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시간 이상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을까. 수천 년간 인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러나 이제 답변이 바뀌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연구진이 죽은 지 한 시간 지난 돼지의 심장과 간 등을 되살리는 데 성공하면서다.

사후 장기 이식 가능성을 대폭 높이는 획기적 연구이자 과학 진보를 통한 생명 연장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순간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기존의 관념은 더욱 모호해지게 됐다. 생명의 정의를 둘러싼 윤리 논쟁도 점차 뜨거워질 전망이다.

사망 6시간 뒤 장기 기능 회복

3일(현지시간) 네나드 세스탄 예일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죽은 돼지의 주요 장기 기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영양분 △항염증제 △세포사 예방제 △신경차단제 △인공 헤모글로빈 △돼지 피 등 13가지 물질을 섞어 만든 ‘오르간엑스(OrganEX)’라는 특수용액을 목숨을 잃은 지 한 시간 지난 돼지 혈관에 투여했다.

6시간 뒤 심장이 다시 뛰고 간에선 알부민(혈장 단백질의 구성성분)이 생성되며 신진대사를 시작했다. 신장과 뇌 등 주요 기관 세포도 살아났다. 이후 연구진이 이 돼지를 해부해 검사하자 실제 장기 일부 기능이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르간엑스 투입 대신 체외막산소공급장치(에크모) 치료만 한 대조군 돼지들이 ‘사체’처럼 뻣뻣해지고 자줏빛 반점이 생긴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논문 공동저자인 데이비드 안드리예비치 교수는 “건강한 장기와 오르간엑스 기술로 치료한 장기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다만 돼지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르간엑스에 포함된 신경 차단제가 뇌 신경 활성화를 막았기 때문이다. 실험 과정에서 돼지 머리와 목 부위 근육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연구진은 뇌 신경 활동이 아닌 척수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부 윤리자문 및 예일대 동물보호위원회가 실험 전 내건 조건은 오르간엑스 관류가 6시간 뒤 중지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만일 실험이 계속됐다면 죽은 돼지가 생명 징후를 얼마나 오랜 기간 유지했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오르간엑스 기술을 사용해 죽은 돼지의 장기와 세포를 회복시키는 과정을 그린 그림. 예일대 홈페이지 캡처

오르간엑스 기술을 사용해 죽은 돼지의 장기와 세포를 회복시키는 과정을 그린 그림. 예일대 홈페이지 캡처


죽음은 가역적? 비가역적?

이번 연구는 장기 이식 가능성을 대폭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이 숨진 뒤에도 장기를 지금보다 더 오래 양호한 상태로 보전한 뒤, 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연구진은 “사람에게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한참 먼 얘기”라면서도 향후 되살린 장기를 다른 생체에 이식해 기능하게 할 수 있는지, 살아 있는 동물 체내에서 손상된 심장이나 뇌 등을 복구시킬 수 있는지 등을 실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리 논쟁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죽음의 기준과 시점이 지금보다 더 모호해지는 탓이다. 과거 심폐소생술(CPR)과 인공호흡기가 처음 세상에 나타났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외신들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을 뒤흔든다(미 CNN 방송)”거나 “죽음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남기게 됐다(영국 가디언)”고 우려했다. 철학자인 벤저민 커티스 영국 노팅엄 트렌트대 박사는 “죽음은 ‘비가역성’ 개념에 의존하기 때문에 업데이트가 필요하게 됐다”며 “현재의 정의가 유지된다면 ‘아직 죽지 않은’ 시체가 누워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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