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회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구두'를 신는 법을 가르칠까

입력
2022.08.06 04:30
<81>교과서 속 수필 '구두'와 남성 입장에 이입하는 교육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이한 작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로서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녀가 함께 고민해볼 지점, 직장과 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성폭력, 젠더와 관련한 뉴스에 달린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지 말라'는 댓글들. 네이버 캡처

지난번 칼럼은 '선량한 대부분의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간다'고 억울해하기 이전에, '문제 있는 여성을 강간할 권리'를 보장해주어 남성들이 가해자가 되기 쉽게 만드는 사회 문화부터 함께 고쳐 나가자고 제안하며 마쳤다. 이어서 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의 96%가 남성이다. 2020년 대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3만1,952건 중 3만603건의 가해자가 남성이었다. 이렇듯 성폭력 사건은 명확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성별로 나뉘는 사건이다. 남성 피해자도 많다고 하지만, 그 경우에도 가해자의 90%는 남성이다. 이런 현실인데도 여성 대상 폭력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젠더갈등 조장하지 말라.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왜 그럴까?

온라인에서만이 아니다. 실제 대화 중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범죄가 많이 발생한다. 나도 지하철에서 성추행 겪은 적이 있다'는 말을 하면 듣기 불편해하는 남성들이 꽤 있다. 범죄자 욕을 했는데도 마치 자신을 욕한 것처럼 '왜 나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네가 짧은 치마 입은 거 아니냐' 묻기도 한다. 심지어 '너는 피해의식이 있다'며 말하는 상대 여성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상한 일이다. '범죄가 심각하다. 나도 피해경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왜 눈앞에 있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입장이 아니라 모르는 범죄자 입장에서 반응할까? 남성들만 이러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여자인데도 피해를 호소하는 지인 앞에서 2차 가해가 되는 말을 하는 여성들도 많다. 쓸데없이 가해자 남성에게 모성애를 발휘하여 감싸주고 그의 창창한 미래를 걱정해주는 것을 보면 속이 터진다. 도대체 왜들 그럴까?

수필 '구두'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계용묵 작가가 1949년에 발표한 '구두'라는 수필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수선 맡긴 구두를 찾아오니 구두 뒤축에 큰 징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작가는 구두 소리가 귀에 거슬리다고 느낀다. 그러던 어느 해질 무렵,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갈 때였다. 앞서가던 젊은 여성이 작가의 발자국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작가는 여성을 안심시키기 위해 앞질러 가고자 빨리 걸었다. 여성은 겁을 먹고 더 빨리 걸어갔다. 결국 둘은 경쟁하듯 구둣소리를 내며 빨리 걷게 된다. 그러다 여성이 옆 골목으로 가면서 상황이 끝난다. 작가는 구두 뒤축에 박은 징을 뽑아 버린다. 마지막 부분은 그대로 인용하겠다.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다음으로 그 구두 징을 뽑아 버렸거니와 살아가노라면 별(別)한데다가 다 신경을 써 가며 살아야 되는 것이 사람임을 알았다. ’

계용묵, '구두'

위 수필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려 있기에 다들 알고 계실 것이다. 주제는 '인간 관계가 왜곡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일상에서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세태에 대한 서글픔'이라고 한다. 학생 시절, 나는 이 수필을 배우고 시험 치르면서 황당했다. 수필은 1인칭으로 서술된다. 그래서 글 속에 등장하는 '나' 즉 화자인 남성의 입장에서 작품을 이해해야 한다. '남성이 성폭력범으로 오해받는 안타까움'에 감정이입을 해야만 했다. 밤길에 모르는 남성으로부터 위험을 느끼는 이런 상황, 당시 나를 비롯해 내 친구들은 자주 겪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범죄 위험을 느끼는 여성의 입장이 아니라 오해받는 남성의 입장에서 쓴 글을 배워야했을까?

교과서 본문 뒤에 이어진 '학습활동'도 이상했다. '이 여성의 입장에서 저자에게 편지쓰기'란 활동이 있었는데, 자습서에는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써야 점수를 받는다는 해설이 있었다. 모의고사를 풀다 보면 '여자가 골목으로 들어가 집에 간 후 느꼈을 감정'을 묻는 문제도 종종 있었다. 5개로 제시된 답 중 '불안하고 무서웠다'는 틀린 답이었고 '저자를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정말 이상했다.

2006학년도 11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언어영역에 출제된 수필 '구두'.

알고 있다. 언어영역 문제란, 개인적 감상을 묻지 않는다. 제시된 글을 글쓴이의 의도대로 파악했는가, 있는 정보를 파악하는 기본적 문해력을 갖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출제 목적이다. 수필 '구두'에서 글쓴이의 집필 의도는 자신이 오해당해서 느낀 씁쓸함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주제는 '타인을 오해하는 각박한 세태'가 되므로, 글쓴이의 의도와 글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여자가 '글쓴이를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긴 하다. 여자가 느꼈을 불안감과 무서움은 정답이 아니다. 여자의 감정이 덜 중요하고 남자의 불쾌감이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단지 본문 글에 그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남성인 자신의 불쾌감에 치중해서 글을 썼기에.

그렇다면 더더욱 이상해진다. 언어능력을 키우기 위해 '글에 나타난 인물의 심리와 저자의 집필 의도, 주제를 제대로 이해했는가'를 배우고 테스트하는 것인데, 왜 우리는 '오해받을 짓을 하고 불쾌해하는 남성'의 입장에서 쓴 지문으로 배워야 했을까? 이왕이면 '폭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입장에서 쓴 지문으로 배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성폭력범으로 오해받는 안타까움’을 가르치는 교육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 성폭력 범죄가 빈번한 이유 중 하나가 어려서부터, 학교와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남성·강자의 관점'을 주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구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래서 여성 혐오 범죄나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자인데도 그 남성의 미래부터 걱정해주고, 어떻게든 피해 여성의 흠을 잡아 원인 제공을 따지는 등 가해자 남성의 입장을 두둔하게 되는 것이다.

왜 21세기에도 여전히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과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을까? 그것은 단지 가해자가 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해자인 강자의 입장을 우선시하는 사회 문화 때문이다. 피해자인 약자의 심정과 상황이 반영된 이야기보다 가해자 쪽 이야기가 더 세상에 알려져서 사람들이 가해자에게 더 감정이입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권력을 가진 쪽이 이야기와 역사 서술을 지배하기 마련이므로.

생각해보라. 폭력적 언행 후 술 마시며 괴로워하는 아버지, 밤에 아들이 잠들면 자기가 때린 곳에 약 발라주는 아버지 등등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문학작품은 왜 이리도 많은가. 아버지가 이렇게나 자식을 사랑하니까 평소의 폭력과 주사를 참으라고? 처음부터 안 때려야 좋은 아버지 아닌가. 이런 이야기들은 학대당하며 성장했어도 아버지 노후 봉양은 하라는 세뇌작업 용도 아닌가. 아픈 사람을 때리고 학대하면서 설렁탕만 사 오면 다인가. 왜 죽은 아내 앞에서 통곡하는 김첨지의 심정을 이해해 주어야 하나.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을 때려도 '본심은 안 그럴 거야'라고 믿고 남자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세뇌작업 용도 아닌가. 이렇게나 많은 작품들이 무려 교과서에서 남성의 폭력을 증언하고 있는데도,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전통적으로 남성의 폭력이 만발했음을 다들 잘 알고 있는데도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지 말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하다.

석장에 짚신 신는 스님...'모든 인간은 잠재적 가해자'

조선 후기 문인화가 조영석(1686~1761)이 나무에 걸터 앉아 쉬고 있는 노승을 그린 '노승헐각'.

이해한다. 낯선 이야기를 듣게 되거나, 자신이 알던 것과 반대의 가치관으로 서술된 정보를 접하면 처음에는 화가 나거나 상대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른 이야기, 약자를 배려해서 함께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이번에는 스님의 지팡이와 짚신 이야기를 소개한다. 스님들은 지팡이 끝에 방울이나 쇠고리 등을 매달아 소리 나게 만든다. 산속 짐승들이 미리 소리를 듣고 피하게 해 주기 위해서다. 유래는 6개의 고리가 달린 석장(錫杖)이다. 또 옛날 스님들은 얼기설기 헐겁게 삼은 짚신을 신고 다녔다. 길 가는 중에 모르고 작은 벌레를 밟더라도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중고교 도덕 교과서에 있던 이야기다. 결국 모든 인간은 다른 생명에게 잠재적 가해자이니 조심하자는 것이 주제다.

모든 인간들은 상황에 따라 자신보다 약자에게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다. 이를 알고 상대가 받을 수도 있는 피해에 대한 공포감을 이해해주는 것이 옳다. 단지 아무 짓도 안 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다고 화부터 낼 일이 아니다. 그렇다.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다 잠재적 가해자다. 그러니, 그만 좀 억울해 했으면.

박신영 작가
젠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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